[청년드림]금융회사 박차고 스펙 포기하고 창업 “젊음이 무기”

[토요판 커버스토리 /3D업종서 뛰는 청년들]

이웅희 와홈 대표(왼쪽)와 한상인 공동대표. 이 대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해외 명문대 학위와 금융회사 이력…. 모두가 부러워하는 스펙이다. 이대로만 계속되면 앞으로도 계속 탄탄대로일 것만 같다. 그런데 이 길 대신 삐쭉삐쭉한 가시밭길을 걷겠단다. 고층빌딩의 넓은 사무실에서 수십억 원대의 돈을 굴리는 금융업 대신 청소하고, 짐 옮기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겠다는 것이다. 3D 청춘 벤처 가운데는 이처럼 안락한 환경을 포기한 이들도 많다.

모건스탠리 명함 대신 빗자루를 잡다

　이웅희 와홈 대표(28)의 경력은 화려하다. 초등학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학교는 한국, 고등학교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나왔다.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모건스탠리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며 4년 동안 투자유치 업무를 했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대표가 설립한 밴처캐피털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자신이 투자를 결정한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대표는 “나도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 미국의 청소 도우미 플랫폼인 ‘핸디’라는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시장 조사를 하면서 더욱 청소 시장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직업소개소에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새벽부터 찾아온 아주머니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이들 중 그날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상당수는 오후 4시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 제대로 된 식사도 못 하고 돌아가야 했다. 그는 침체돼 있는 시장일수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당장 영업을 위해 바닥부터 훑어야 했다. 지난해 7월 창업 후 초반에는 비타500을 들고 서비스 중점 지역인 서울 강남에 있는 대부분의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주변 건물 청소가 있으면 꼭 ‘와홈’을 소개해 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홍보를 위해 새벽부터 전단 수백 장을 뿌리기도 했다. 젊은 남자가 새벽에 청소 전단을 뿌리니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많았다.

　전단을 아무리 뿌려도 다시 버려지기 일쑤. 이 대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묘수를 짜냈다. 새벽에 고속터미널 꽃시장에 가서 노란 소국을 산 후 전단과 함께 나눠준 것이다. 이렇게 하자 아주머니들이 서서히 관심을 갖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전단을 나눠주며 와홈 서비스를 소개했고, 그렇게 조금씩 주문이 늘기 시작했다.

　잘나가던 금융맨이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창틀의 찌든 때를 닦고, 하수구에 걸린 머리카락을 꺼내기 위해 맨손을 집어넣는 일도 했다. 그는 “지금은 모두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여간 낯선 일이 아니었다”며 웃었다.　　　

　시장 조사 때 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와홈은 청소도우미와 소비자를 일대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내놨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청소도우미는 직업소개소에 나가지 않고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 현재 와홈에 등록된 청소도우미 ‘헬퍼’의 수는 2200여 명에 이른다. 월 매출은 2억 원 규모다.

와튼 경영학과 학생이 식재료 전문가로

　

최준용 에피세리 대표가 배달 자전거를 타
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최준용 대표(27)는 미국 명문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출신이다. 중학교 때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생활했다. 고등학교 때는 위스콘신 주의 육상 대표로 나갈 정도로 운동신경도 뛰어나다. 미국에서 잘 지내던 그는 지난해 초 한국에서 열린 ‘장영실 벤처포럼’에 참여하기 위해 2박 3일 동안 한국에 왔다. 이 포럼에서 ‘신선한 식재료 배달 비즈니스’라는 그의 아이디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 대표는 새로운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지난해 5월 한국에 돌아왔다. 부모님께는 비밀에 부쳤다. 이후 외부 투자를 유치하고서야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고 사실을 털어놨다.

　평소 음식 재료에 관심이 없던 그에게 이 비즈니스는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지금은 식재료 전문가가 다 됐지만 처음에는 신선하고 맛있는 채소를 고르는 일부터가 어려웠다. 책과 인터넷을 보고 배운 지식을 통해 재료를 사도 결과는 형편없었다. 최 대표는 “초반에 좋은 식재료를 배우기 위해 버린 돈과 음식의 양이 어마어마하다”며 “먹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재료를 사 온 적도 있다”고 했다. 주문 후 1시간 내 배달을 하려고 빠르게 움직이다 보면 재료가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달걀이 그랬다. 아무리 여러 번 스펀지를 깔고 보호막을 씌워도 깨지기 일쑤였다. 그러면 다시 배달을 해야 했다. 배달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와우산을 오를 때는 체력이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도 “허벅지가 터질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재래시장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망원시장 상인들은 “지금은 에피세리가 우리의 든든한 고객”이라며 “덕분에 우리 매출도 늘고 시장에 젊은 사람도 많이 보여 좋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에는 ‘뭐하는 청년인가’ 하며 의구심을 갖고 보던 이들도 지금은 모두 최 대표에게 줄 좋은 재료를 미리 빼놓을 정도가 됐다. 시장 상인을 위해 에피세리는 ‘당일 결제 시스템’을 운영한다. 현금 흐름이 중요한 전통시장 상인들을 배려한 것이다. 고객에게 배달한 재료가 신선하지 않으면 에피세리는 100% 환불하는 정책도 운영한다. 소비자가 믿고 에피세리를 이용할 수 있는 이유다.

　최 대표의 친구 가운데는 이미 학교를 졸업한 뒤 좋은 직장에 취업한 이들이 많다. 억대 연봉을 받는 친구들도 여럿이다. 그들의 삶이 부럽지 않은지 물었다. 최 대표는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내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며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확고하기 때문에 전문직종의 친구들을 봐도 별로 위화감이 없다”고 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멋있다”

이종호 큰집 대표(가운데)는 “작은 도시에 공간이라는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호 큰집 대표(23)는 올 6월 열린 ‘제5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참가자 중 최연소였다. 집안에서 안 쓰는 짐을 맡아줌으로써 고객이 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오랜 유학생활을 하면서 느낀 불편함을 사업화한 것이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벌써부터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이 대표는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고 짐을 옮기느라 하루 종일 바쁘다.

　이 대표도 미국 뱁슨대를 나와 현지 금융회사에서 근무한 엘리트다. 대학에서 기업가정신을 공부한 그는 창업에 대한 오랜 꿈을 간직해 오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왔다.

　그는 “기업은 ‘꾀할 기(企)’에 ‘업적 업(業)’을 써 이뤄진 글자”라며 “주체적으로 일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져왔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편한 직장 대신 왜 몸 쓰는 힘든 일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는 “힘들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난다”며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제일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작은 도시에 공간이라는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큰집은 단순한 창고지기 서비스가 아니다. 좀 더 진화했다.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짐이 현재 어디에, 어떤 상태로 보관돼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아직은 작은 도전이지만 앞으로 집과 관련한 여러 가지 비즈니스를 하고, 이를 통해 추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동혁 hack@donga.com·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