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새 작품은 역사소설이다. 주인공은 ‘마타 하리’.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무용수다. 작가가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이유는 뭘까.
그는 마타 하리에 대해 이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마타 하리는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로 그 시대 남성들의 요구에 저항하며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선택했다.” 코엘료가 펼쳐 보이는 마타 하리의 삶의 서사는 이 관점이 뚜렷하게 녹아 있다.
소설은 마타 하리가 직접 자신의 생애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프랑스 생라자르 교도소에 수감된 마타 하리가 사형을 앞두고 변호사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출발점이다. 잘 알려졌듯 마타 하리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인도네시아)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파리로 떠난다. 마타 하리가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가난에 시달리다 신문의 결혼광고를 보고 결혼을 감행했다는 게 정설이지만, 작가는 여기에 상상력을 더한다.
마타 하리가 다니던 학교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했다는 ‘사연’이 더해진다. 7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과의 이혼이 의처증과 폭력 때문이었다는 추정도 소설에서 그대로 옮겨진다. 작가는 마타 하리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것을 극적인 계기로 풀어낸다. 무용 공연에서 만난 장교 부부의 사건이다. 공연장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장교의 부인은 남편에게 “오직 사랑만이 아무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줄 수 있어요. 내게는 그 사랑이 없다는 게 드러났네요”라며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다. 마타 하리가 ‘피의 세례’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이후 그가 독자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전환점이 된다.
마타 하리는 이국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모으는 무용수가 되고 이어서 관료들과 어울리면서 프랑스 사교계를 드나들게 된다. 작가는 마타 하리가 오스카 와일드, 프로이트,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과 교류를 나누는 장면도 유머를 가미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독일 정보부가 그에게 스파이 임무를 제안하고 프랑스 당국이 이중 스파이 혐의로 체포하는 과정은 알려진 대로 흘러가지만 작가는 마타 하리의 자의식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작가는 마타 하리를 애국적이진 않았지만 자신의 독립성을 위해 움직인 여성으로 그린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태어난 여자이고,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훗날 내 이름이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코엘료의 다른 소설이 그렇듯 책은 빠르게 읽힌다. 역사소설이지만 작가는 사료를 꼼꼼하게 반영하지 않고 얼개만 유지하면서 마타 하리라는 여성의 내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실제 마타 하리가 스파이였는지는 아직도 모호하지만, 코엘료가 불러낸 마타 하리는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여성이자 21세기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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