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농부에게는 뭉개진 칡 순마저 시가 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4일 03시 00분


◇엄마 몰래/장동이 지음·한차연 그림/112쪽·1만500원·문학동네

 눈에 익지 않은 책을 볼 때는, 작가 소개를 먼저 읽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소개 글은 적잖이 당황스럽습니다.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2010년에 등단했다’가 전부입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닌가 봅니다. 책 뒤에 붙은 해설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지금 제 글보다도 길게 써 놓았습니다. 되레 작품을 읽으며 작가를 찾아내야 되겠어요.

 시를 읽어 보면 작가는 문경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40여 년 전에 죽은 친구는 매일 보는 언덕길에 묻혀 있고(‘내 친구, 정삼이’), 할머니들 흉도 다 드러낼 만큼 오랫동안 보아온 동네(‘그렇게 믿는 거야’)에 삽니다.

 그리고 농부입니다. 농작물을 키워서 농부라기보다는 마을의 풍경 속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이 농부여서 농부입니다. 그의 시선은 마을 속 어디에도 닿아 있습니다. 시원스레 뻗어 나오지 못하는 매미의 첫 울음 소리도 응원을 해주고(‘여름’), 사람과 눈이 딱 마주쳐 당황한 고라니가 헷갈릴까 염려하고(‘엄마 몰래’), 차바퀴에 뭉개진 칡 순에 눈길을 주기도(‘새순 몇’) 합니다.

 그리고 시인입니다. 어느 결에도 날카로운 촉수를 잠재우지 못합니다. 새소리 들려 날이 새면 ‘하루뿐인 오늘’을 감지하고(‘산골 아침’), 늦은 밤엔 빗소리와 마주 앉아(‘하늘 소식’) 있습니다. 오늘도 ‘쪼그라드는 일, 물기 빼는 일’을(‘날날이’) 해내고 있습니다. 천형처럼, 천복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한 지역, 모든 구성원(사람뿐 아니라 민달팽이, 머위 꽃, 빗방울, 달빛 등을 포함한다)에 대해 오랫동안 알아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시가 되었습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
#엄마 몰래#장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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