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사용하는 1000만 원 이상 실습기자재 중 절반 이상이 내구연한이 초과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학교 중에는 1979년에 취득해 37년이나 된 기자재를 아직까지 쓰는 곳도 있었다. 정부가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에서 실무 교육으로 전문 직업 인재를 양성한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산업 트렌드를 배우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셈이다.
김세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누리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확보한 ‘전국 특성화고·마이스터고 1000만 원 이상 실습기자재 현황’에 따르면 16개 지역(전북은 자료 제출 거부) 학교에서 보유한 실습기자재는 1만1139개였다. 이 중 내구연한이 초과된 기자재는 50.6%(5635개)에 달했다. 이 가운데 836개(14.8%)는 사용이 전혀 불가능한 상태인데도 학교들이 아직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들은 교육상 필요하다거나 폐기 처분이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드는데, 기자재 확보율을 올리는 데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기자재의 내구연한은 보통 5∼10년이다. 각 학교에서 취득한 지 20년이 지난 기자재는 623개(5.6%)에 달했다.
내구연한이 지났다고 해당 기자재를 아예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오래된 기자재가 제때 교체되지 않으면 실무에 바로 투입해도 무방한 전문 인재를 육성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낡은 기자재를 쓰다 보면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의 A고는 1979년 1033만 원씩을 들여 구입한 수직밀링머신(커터로 공작물을 자르거나 깎는 기구) 두 대를 아직 사용 중이다. 내구연한은 10년으로 지난 지 한참 됐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밀링머신 사용률이 과거보다 떨어졌지만 보수해가며 쓰고 있다. 요즘은 밀링머신보다는 CNC선반(컴퓨터를 이용한 자동 선반)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A고는 CNC선반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 한 대에 최대 6000만∼7000만 원을 호가하는 기계를 살 만한 예산이 없어서다. 보통 같은 기계가 여러 대 필요하면 몇 해에 나눠 산다. 이 학교 교감은 “여러 학생이 기계를 돌려쓰다 보니 실습과 시험 때 대기시간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전북을 제외한 16개 시도 교육청의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실습 기자재 확충 예산은 499억9000만 원이다. 이걸 기준으로 내구연한이 초과된 기자재만 바꾼다고 가정해도(평균 취득가 2500만 원 기준) 3년이 넘게 걸린다. 이렇게 바꾸어도 산업 트렌드 변화는 매우 빨라 금방 구식이 되는 것도 문제다.
김 의원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는 시대에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가 구입한 지 수십 년 된 기자재를 계속 활용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산업현장에서 직접적인 실습교육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마이스터고 관계자는 “대부분 산업계는 ‘우리가 (경영이 어려워) 죽어 가는데 무슨 고등학생 교육이냐’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며 “몇 학교가 함께 사용하는 공동실습소라도 많이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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