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정훈]힐러리의 돈, 그리고 독한 사랑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6일 03시 00분


박정훈 워싱턴특파원
박정훈 워싱턴특파원
 1998년 51세의 퍼스트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 남편 빌은 그해 8월 15일 아침 힐러리에게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고백했다. 10여 차례 맺은 성관계 장면은 특별검사 보고서로 세상에 공개됐다. ‘섹스(sex)’라는 단어가 164회나 등장하는, 더구나 구강성교와 폰섹스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된 보고서였다. 힐러리는 딸과 함께 빌의 연방대배심 증언을 들어야 했다. 빌이 르윈스키에게 자신을 ‘냉혈한(cold fish)’이라고 흉본 이야기는 자존심까지 짓밟았다.

 나중엔 빌의 성폭행 전력(前歷)까지 책으로 출간됐다. ‘1969년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 시절 19세 여대생을 성폭행해 학위를 받지 못했고, 결혼 3년 뒤인 1978년 주지사 캠프 자원봉사자의 입술을 깨물어 가며 강간했다’는 증언이었다.

 외도뿐이 아니었다. 성추문 소송에 변호사를 대느라 빚이 1100만 달러(약 120억 원)까지 늘었다. 힐러리는 2014년 인터뷰에서 “(2001년 1월) 백악관을 떠날 때 스탠퍼드대 학생이던 첼시의 학비도 버거웠다. 우리는 파산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누구보다 권력욕이 강하다지만 힐러리도 여자다. 외도에 성폭행, 파산, 거기에 자존심까지 뭉갠 남편과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녀는 2003년 자서전에서 “남편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싶었지만 마침내 남편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고 썼다. 사랑을 결심으로 한다는 건 힐러리다운 독한 일이다. 다른 미국 여성과 달리 결혼 후에도 자신의 원래 성(姓)인 로댐(Rodham)을 중간 이름으로 쓴 힐러리 아닌가. 자존심 대신 정치적 미래를 택한 그녀에게 정말 남편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었을까.

 엄청난 빚 때문이었는지 백악관을 나온 힐러리는 ‘돈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다. 한 번에 2억 원짜리 강연으로 300억 원을 벌어들였고, 책을 팔기 위한 서명 행사로 전국을 누볐다. 국무장관 시절에는 각국 인사들을 만나주는 대가로 클린턴재단에 1억 달러(약 1100억 원) 이상을 후원받은 의혹까지 받고 있다. 이 재단 운영에는 딸까지 참여하고 있고, 개인 용도로 돈을 빼 썼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에는 유세까지 뒷전으로 미뤄 놓은 채 밥 한 끼 먹어주고 5500만 원씩, 사진 한 번 찍어주고 1100만 원씩 받아 3주 만에 560억 원을 챙겼다. 그녀에게 우호적인 주류 언론까지 제정신이 아니라고 비난했다.

 주고받는 게 일상화돼 있는 미국에서 거액의 후원은 음습한 뒷거래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공화당 안팎에서는 “힐러리가 돈을 받고 국가 기밀을 팔았다”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국무장관 자리도 돈벌이에 활용한 그녀가 대통령이 된다고 달라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악착같이 돈을 모은 그녀는 남편 퇴임 1년 만에 빚을 청산하고, 올해 2150만 달러(약 230억 원)를 재산으로 신고했다. 우리 정치인이 힐러리처럼 살았다면 대통령은커녕 검사들의 먹잇감이 됐을 게 뻔하다. “집에서 돈이나 세라”는 댓글 폭탄과 함께 정치권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트럼프와 상대하면서도 힐러리의 호감지수가 계속 떨어지는 건 ‘순수하지 않은 사랑’, 그리고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 탓이다. 두 가지 다 ‘독종’의 이야기다. 특권을 즐기면서도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약자의 편에 선다”는 그녀의 말은 그래서 별 울림이 없다. 힐러리는 그저 자기 자신의 편에 설 뿐이다.

 흑인보다 50년이나 늦게 여성참정권을 인정한 미국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하는 힐러리. 하지만 나는 그 도전이 그리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박정훈 워싱턴특파원 sunshade@donga.com
#힐러리#미국#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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