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Black Box 360]대학병원서 간호사가 진료에 수술까지?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10월 7일 11시 34분


<충격 증언> 병원에 ‘유령 의사’가 떠돈다! ①



“PA(Physician Assistant, 의사보조원)가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직접 집도하는 걸 봤다. 디스크 수술이었는데, 환자의 척추 뼈 하나를 완전히 제거하고 그 안에 기둥을 세우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모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4년차 전공의(레지던트) A씨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의사도 아닌 PA가 직접 수술을 하다니…. 쉽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일까? 어렵게 꺼낸 그의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유명한 교수들은 하루에 많게는 10건 정도 수술을 한다. (모든 수술실에) 다 못 들어간다. 결국 평소 손발을 맞췄던 PA에게 간단한 봉합뿐만 아니라 수술 자체를 맡기는 경우가 생긴다. PA에게 수술을 맡긴 그 교수는 다음날 아침 콘퍼런스(회의)에서 ‘내가 한 것보다 잘했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더라.”
‘특진비’ 냈는데 PA가 수술하다니…

PA는 병원에 따라 SA(Surgery Assistant, 수술보조원), NP(Nurse Practitioner, 임상간호사), 전담간호사 등으로 불린다. 간호사인 이들은 주로 흉부외과와 신경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 전공의가 부족한 과에서 수술 또는 진료의 단순 보조업무에 투입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불법 의료행위지만 상급 종합병원을 포함해 상당수 병원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게 현실이다.

전공의 A씨의 증언대로라면, 이들의 불법 의료행위 정도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정작 수술실에서 수련을 받아야 할 전공의가 PA에 밀려 오히려 배제된다는 것.

“PA가 수술할 때 전공의는 병동에서 입·퇴원환자들 관리하고 의료기록 쓰고, 수술 전 준비와 수술 후 뒤처리 하느라 바쁘다. 직접 수술하고 싶어서 전공의를 하는데, 정작 수술실엔 들어가기 힘든 게 전공의들의 현실이다. 심지어 전공의 대신 PA들이 학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 전공의 A씨 역시 가장 안타까워하는 부분이다.

“환자는 그 교수에게 수술을 받기 위해 특진비를 내려고 빚까지 졌다고 하더라. 그런데 의사가 아니라 PA한테 수술을 받았다면 환자의 심경이 어떻겠는가. 문제는 환자가 그런 사실을 알 길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특진비는 고스란히 병원 수익으로 처리된다.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전공의 A씨가 지목한 교수는 국내에서 유명한 신경외과 전문의 B교수. 하지만 B교수는 “(PA의 역할은) 전문의와 함께 수술실에 들어와 드레싱 정도 도와준 게 전부”라면서 수술을 맡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자신이 겪은 PA(Physician Assistant, 의사보조원)들의 불법 의료행위 실태를 고발한 전공의 A씨.
한 대학병원에서 자신이 겪은 PA(Physician Assistant, 의사보조원)들의 불법 의료행위 실태를 고발한 전공의 A씨.
암 수술 3시간에 4건…‘신의 손’?

과연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 B교수는 올해 재단 고위 임원에 오르면서 더 이상 수술은 하지 않는 상태. 기자는 서울시내 일부 대학병원 수술현황 기록을 입수해 분석해봤다. 그 결과, 실제 하루에 9~10건에 달하는 수술을 하는 의사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해당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의사들이었다.

대표적으로 유방암 분야에서 손꼽히는 모 대학병원 C교수의 경우 하루에 많게는 10건의 수술을 했다. 한 날의 수술기록을 보면 오전 8시에 두개의 수술실에서 동시에 수술을 시작한데 이어 10시에 또 다시 두 개의 수술실에서 동시에 수술을 한 것으로 돼 있다. 한 의사가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3시간 동안 두개의 방을 오가면서 4건의 수술을 처리했다는 이야기다.
다시 11시부터 이어진 수술은 16시까지 6시간 동안 1시간 단위로 쉼 없이 진행됐다. 이날 마지막 수술을 1시간 만에 끝냈다고 가정하면, 이 의사가 이날 10건의 유방암 수술을 처리한 시간은 9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해당 병원 관계자는 “대부분 유방암 부분 절제술이었고, C교수의 경우 숙련도가 높아 1시간을 넘기는 수술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환자를 절대 맡기는 분이 아니다”라면서 다른 의사나 PA가 대신 수술했을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하지만 20여 년 경력의 마취과 전문의의 이야기는 달랐다.

“유방암 수술은 평균 3~4시간 걸린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2시간 남짓 소요된다. 그런데 한 의사가 1~2시간 단위로 동시에 2개의 수술을 진행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모든 수술에 전공의들이 투입될 수도 없다. 집도의 1명에 배치되는 전문의는 많아야 3~4명인데, 이들이 수술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외래와 병실도 돌아야한다. 결국 PA들이 전공의를 대신해 수술의 일부를 맡을 수밖에 없다. 나도 많이 봤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수술실 자료 사진(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수술실 자료 사진(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정부 “현황 파악 안 돼 단속 어렵다”

곽찬영 한림대 간호학부 교수와 박진아 호원대 간호학과 교수가 2014년 공동 발표한 ‘전담간호사 운영현황과 역할 실태’ 논문에도 PA들이 ‘수술 및 시술 보조’ ‘창상봉합’ ‘환자의 수술기록 작성’ 등 수술실에서 의사의 의료행위를 대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단속 의지는 없어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별도의 자격이나 면허가 없는 PA들이 간호사 면허 범위를 벗어난 의료행위를 한다면 무면허 행위”라면서도 “현황을 파악하기 쉽지 않아 단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과 전공의 근무시간 감축에 따른 대책마련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면서 “PA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서 필요하면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 간에 논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매거진d#유령의사#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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