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우기’ 돌입한 비박… 친박 “여기서 밀리면 폐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일 03시 00분


[최순실 게이트/중심 못잡는 정치권]비박 대선주자 “재창당”… 與 내홍
비박 “친박 손떼야” 압박수위 높여… 서청원 “이렇게 몰고가서야 되나”
친박, 책임총리 카드로 돌파구 모색… 이정현 거취, 11월 첫째 주 의총이 고비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확산되면서 여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지도부 사퇴를 둘러싼 새누리당의 내홍이 심화되고 있다. 비박(비박근혜) 진영은 물론이고 일부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하는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여권 대선 주자들까지 나서 재창당을 요구하면서 이정현 대표 체제는 출범 3개월 만에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1일 긴급 회동한 김무성 전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비박 진영의 잠재적 대선 주자 5명은 ‘재창당의 길’을 주장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초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기존 한나라당과 결별해 만든 새누리당을 전면 바꾸자는 것이다. 이른바 ‘박근혜 지우기’에 돌입하겠다는 얘기다.

 재창당 요구에는 당의 주류인 친박계가 당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비주류를 중심으로 체제를 재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재창당을 위한 첫 단계로 친박이 포진한 현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의 공동 행동은 친박이 2선으로 후퇴하지 않으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비박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참석 요청을 받았지만 회동에 불참했다.

 당 지도부와 친박 핵심에서는 ‘이정현 지키기’에 강경한 태도다. 청와대 인적 쇄신과 거국내각 구성 카드를 선제적으로 던진 데 이어 책임총리제로 정면 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정치색이 없고 국정 운영 경험이 있는 이홍구, 고건 전 국무총리를 책임총리로 제시해야 야당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친박계는 이정현 체제가 붕괴할 경우 자칫 정치적 재기가 불가능한 폐족(廢族)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도 전날 여야 중진 의원 만찬 회동 이후 비박인 정병국 나경원 의원 등을 따로 만나 “이렇게 (이 대표를) 몰고 가서야 되겠느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는 이번주 중 열릴 의원총회가 지도부 붕괴 여부를 가를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박이 주축이 된 3선 이상 중진 의원 21명은 이날 회동에서 “이 대표가 당원과 국민의 입장을 받아들여 스스로 거취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의총을 기점으로 연판장 돌리기 등 본격적인 퇴진 촉구 행동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총을 앞두고 친박계는 집단행동에 가세한 초·재선 의원들을 상대로 압박하기도 했다. 한 초선 의원은 “친박 중진에게 ‘사태 수습이 우선이고, 대안도 없는 상황 아니냐’는 전화를 받았다”라며 “한 의원은 너무 시달려 모임에서 이름을 빼 달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중진 회동 간사 격인 황영철 의원은 “초·재선의 자유로운 정치 활동을 방해하는 움직임이 확인됐다”라며 친박을 향해 경고했다.

홍수영 gaea@donga.com·송찬욱·강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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