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2차 주말 촛불집회가 5일 주최 측 추산 30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중고교생부터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년층 보수 유권자까지 20만 명(경찰 추산은 4만5000명)이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평화적으로 표출했다. 세 아이의 어머니라는 한 시민이 발언대에 올라 “아이들에게 ‘정직하게, 착하게 살지 않으면 천벌 받는다’고 가르쳤는데 더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은 국민의 심정을 대변한다.
경찰도 지난달 29일 첫 주말 집회보다 시위 군중이 4배나 늘어났다고 볼 만큼 촛불은 들불처럼 번졌다. 박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4일 두 번째 사과에서는 야권과 협의 없이 ‘내치(內治) 총리’를 지명한 것을 해명하고 ‘2선 후퇴’를 천명함으로써 국정 주도 의지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김병준 총리 후보자와 독대할 때 이 같은 의지를 보인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에서는 밝히지 않은 이유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친박(친박근혜) 때문이라면 친박은 역사적 심판을 면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의 명운은 앞으로 5일이 좌우할 것이다. 대통령이 서둘러 정국 수습책을 내지 않는다면 12일 촛불집회에는 더 많은 국민이 몰릴 것이고, 하야(下野) 요구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은 오늘이라도 여야 대표 회담을 공식 제의해야 한다. 국회라도 직접 찾아가 김병준 ‘책임총리’에의 권한 위임과 2선 후퇴, 새누리당 탈당 등을 밝혀야 한다.
국정 붕괴 책임을 져야 할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여당의 친박 지도부가 퇴진을 거부하는 것은 후안무치의 극치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4일 의원총회에서 ‘청와대에서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 비상대책위원장 후보까지 내려보냈다’고 폭로했다. 여당을 ‘청와대 하부기관’으로 만든 박 대통령이 탈당하면 친박은 끈 떨어진 신세가 될까 두려운가. 친박 상당수는 최순실의 존재를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방조했고, 더러는 국정 농단에 장단 맞췄다. 잘못된 길을 가는 대통령에게 간언하기보다는 맹목적 추종으로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면서 대통령을 실패의 길로 이끌었다. 양심이 있다면 친박은 입을 다물고 새누리당이 대통령 없이 거듭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야당은 국정 혼돈을 극대화할 정략이 아니라면 국난 극복에 힘을 보태기 바란다. 김 총리 후보자 지명 철회를 요구했지만 설령 김 후보자가 물러난다고 해도 과연 거국내각에 참여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눈앞에 다가온 ‘미래 기득권’을 놓칠까 봐 현재의 혼란을 오래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민주당과 국민의당 가운데 어느 정당이 국정을 수습할 능력과 책임감, 그리고 리더십을 지녔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국민적 분노를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정당이 조기 대선이나 하야 같은 무책임한 주장을 펴다가 역풍을 맞는 것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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