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씨(60·구속) 국정 농단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12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교복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학생들 앞에는 작은 모금함이 놓여 있었다. 앳된 얼굴의 남학생들은 시민들에게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일 앞둔 수험생들이다. 하지만 이날 문제집 대신 피켓을 손에 들고 거리로 나왔다. 무심히 학생들의 곁을 지나치던 사람들은 “저희는 수능을 불과 5일 앞둔 고3입니다”라는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시민들은 고3 수험생의 쉽지 않은 용기에 선뜻 지갑을 열었다. 한 시민은 “학생들에게 이런 짐을 지게 해 미안하다”면서 학생들을 토닥여 줬다.
모금함에는 언뜻 보기에도 꽤 많은 지폐가 들어 있었다. 지난주 집회에 이어 두 번째 모금을 하고 있다는 학생들은 모인 돈으로 생수와 양초를 구입해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목소리를 높인 듯 목이 이미 쉰 상태였지만 학생들의 외침은 계속됐다.
박채운 군(18)은 “물론 학생으로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국가가 바로 서지 못하는데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던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 건 최 씨의 딸 정유라 씨(20)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박 군은 “보통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3년을 밤낮으로 고생하는데, 정 씨는 좋은 집안 덕분에 아무 노력 없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며 “중고교생들을 거리로 이끈 건 바로 정 씨”라고 말했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수험생들은 정 씨를 향한 분노를 쏟아냈다. 학원을 마치고 뒤늦게 집회에 참석한 김민아 양(18)은 “아침에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뛰고, 저녁까지 졸린 눈을 비벼 가며 공부했다”며 “정 씨는 평범한 학생들의 노력과 고생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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