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인사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여부 결정 시기를 언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는 층이 늘고 있다. 다음 대선과 특검 수사 기간에 대한 우려도 내비친다.
야당과 일부 헌법학자들이 헌법재판소의 빠른 결정을 주문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그 결정과 맞물린 대통령 선거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에는 60일 안에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특검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 결정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탄핵 직후 열리는 대선이 특검 수사의 영향을 받는 형국이 그려진다.
짧은 대선 기간에는 이미 얼굴이 알려진 주자가 선거 채비를 못 한 후발 주자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선거 불평등’ 문제는 이미 알려진 얘기. 여기에다 특검 수사가 유권자의 표심을 흔든다면 불공정 게임 또는 선거 중립성 훼손이라는 논란을 맞게 된다. 특히 야권 주장대로 내년 1월 말에 탄핵이 결정되고 특검 수사가 내년 2월 말에 끝난다면 60일 이내의 기간 중 절반이 특검 수사 기간과 겹치기에 그런 논란을 피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탄핵 시도 하나만으로도 그 효과가 ‘어마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르윈스키 성추문에 대한 위증 등의 의혹을 받고 있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9년 2월 12일 미 상원에서 탄핵 기각 결정을 받았지만 그 이듬해 열린 대선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클린턴 후계자였던 앨 고어 후보는 행정 능력을 앞세워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맞섰지만 이길 수 없었다. 선거판은 후보자의 능력보다 도덕성 문제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유권자뉴스서비스의 조사 결과 선거 당시 미 유권자의 44%는 클린턴 스캔들이 후보를 고르는 데 중요한 변수였다고 응답했다.
한국 대선도 탄핵 돌풍을 맞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 상황에서 특검까지 선거를 좌우하는 독립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만일 박 대통령이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다면 특검이 범죄의 정도에 따라 ‘전직’ 대통령 체포와 구속 수사를 못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 장면을 기대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심정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러나 국정 농단 장본인 처벌이라는 순수 목적으로 출발한 특검도 대선 국면에서는 정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기 쉽다. 보수층으로부터는 “특정 후보 편 들어주는 수사를 중단하라”는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야당이 “계속 수사”를 외치겠지만 그때의 수사는 선거의 도구로 변질된다.
탄핵심판 결정이 특검 수사 종료보다 한참 늦어지는 것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대통령 직무정지와 권한대행 체제라는 과도기를 길게 끌지 말라는 헌법의 정신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 측의 지연 전략에 끌려다닌다는 오해를 살 만하다.
물론 이 같은 경우의 수들은 본격 수사를 앞두고 있는 특검이 고민하거나 책임질 사안은 아니다. 국회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특검과 탄핵을 별도로 추진할 때 초유의 헌정 사태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려보지 못한 결과다.
특검이 수사 종료 시기를 내년 2월 말로 제시하며 불확실성의 일부를 제거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헌재 심판 결정일이 정해지지 않았는데, 지금 심판 시한을 결정하라고 압박하면 그 자체가 자유로운 심리를 방해하게 된다.
결국 수사로 인한 표심 왜곡 방지와 공정한 대선 환경은 이제 막 준비 절차를 밟고 있는 헌재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이나 제도가 아닌 재판관들의 ‘지혜’만을 기대해야 하는 처지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이게 나라의 현실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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