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출신의 도널드 트럼프(71)가 1월 20일(현지 시간)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은 ‘United States of America’, 즉 하나의 국가와 같은 각각의 주가 ‘아메리카’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뭉쳐진 연방국이기에 각 주별로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느끼는 온도 차가 천차만별이다. 적어도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서는 정말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 역시도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아주 짓궂은 농담쯤으로 여겼으니 말이다. 딱히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4년보다는 그다음 4년을 준비하자는 생각으로 쓰린 속을 달래고 있다. SNS상에는 벌써 “2020 미셸 오바마”를 외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의 난폭하기 그지없는 언어 구사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나름의 오만과 편견에 기반한 세계관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새로운 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다소나마 부드럽게 희석시켜줄 존재는 역시 퍼스트레이디일 것이다. 버락 오바마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예를 보면, 선거전부터 재임 기간 내내 퍼스트레이디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는 선거전에서부터 영 신통치 못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후보자 남편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을 잡는 행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남편을 위한 첫 지지 연설 당시 미셸 오바마의 버락 오바마 지지 연설을 표절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정 부분의 참고 수준이 아닌 거의 똑같이 베꼈다는 지적까지 나오며 영부인 후보로서의 자질까지 의심받게 했다. 그녀는 ‘연설문을 표절해야 할 정도의 지적 수준’이라며 언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그저 묵묵부답으로 넘겼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의 지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그녀의 남편이 금세 더 크고 더 많은 구설을 만들어 그녀의 실책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멜라니아 트럼프는 도널드 트럼프의 세번째 부인이다. 첫 번째 부인 이바나(1977~92), 두 번째 부인 말라 메이플스(1993~99)에 이어 세 번째로 2005년에 트럼프와 결혼식을 올렸다. 모델 출신인 그녀는 미국의 주얼리와 시계 디자이너라는 경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딱히 주얼리 디자이너라고 칭할 정도로 대단한 업적이나 실적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한 매체는 ‘뉴욕에서 자신을 주얼리 디자이너라고 칭하는 전직 모델이 도대체 몇 명인 줄 아느냐’며 비꼬기도 했다.
1970년생으로 슬로베니아 세브니차에서 출생한 그녀는 최초의 동유럽 이민자 퍼스트레이디로 등극하게 됐다. 멜라니아 트럼프의 고국인 발칸반도의 슬로베니아는 벌써부터 관광 특수 등 ‘멜라니아 효과’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하다.
16세 때부터 모델로 활동했을 만큼 눈에 띄는 미모를 지닌 멜라니아는 1996년 미국으로 이주, 모델로 활동하다가 2005년 24세 연상인 도널드 트럼프와 플로리다 주의 팜비치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듬해 정식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으며, 같은 해 트럼프의 막내아들 바론을 출산했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경선 당시, 영국판 〈GQ〉에 실렸던 모델 시절의 세미 누드 사진이 공개되자 이에 적극 대응하면서 선거전에 본격 뛰어든 멜라니아 트럼프는, 이전 모델 시절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인지 최근에는 지적이면서 차분한 성격을 어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10년 전 음담패설 녹음 파일이 공개되어 여성 폄하라는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여성으로서 참을 수 없지만, 남편을 용서해달라”며 차분히 유권자들을 설득해 트럼프를 위기에서 구출해내기도 했다. 톰 포드에 거절당한 멜라니아 트럼프
하지만 패션계에서 멜라니아 트럼프의 지지율은 한없이 처참하다. 미국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가 열혈 민주당 지지자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 힐러리 클린턴, 미셸 오바마와 돈독한 사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여성 패션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갈구하던 그녀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는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결과였을 것이다. 디자이너 톰 포드는 멜라니아 측의 드레스 디자인 의뢰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 후 그는 멜라니아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패션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어요. 그렇게 남자 보는 센스가 없는 사람이 패션에 대한 센스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에게 제 옷을 입히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답함으로써 트럼프 부부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굴욕을 안겨주었다.
패션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트럼프 성을 가진 인물은 다름 아닌 큰딸 이반카 트럼프이다.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이반카, 에릭, 티파니, 바론 5명의 자녀가 있는데,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전직 모델 출신으로 명문 프라하 카렐 대학을 졸업한 기업인이기도 했던 첫 번째 부인 이바나 트럼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바나는 이혼 당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위자료를 받았다.
미국 출생의 배우이자 가수였던 두 번째 아내 말라 메이플스는 차녀 티파니의 엄마이며, 티파니는 1993년생으로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출신의 재원이다. 그리고 세 번째이자 현 부인인 멜라니아와의 사이에는 아들 바론이 있다.
미모와 지략을 겸비한 이반카는 선거운동 기간 ‘전가의 보도(傳家之寶刀)’이자 ‘비밀 병기’로 맹활약했다. 잇단 여성 비하 발언과 음담패설, 성 추문으로 여성에게 비호감 절정이던 아버지를 대신해 보육 비용 세금 공제 혜택과 6주간의 출산 휴가 등 여성 정책을 내놓으며 표밭을 다지기도 했다.
이반카는 도널드 트럼프 기업의 개발?인수 부문 부사장이자 기업의 부동산 호텔 경영도 맡고 있는 사업가이며, 자신이 이끄는 주얼리 브랜드 ‘이반카 트럼프 컬렉션’의 디자이너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빼어난 미모로 주목받아 일찍이 패션모델로도 활약하며 〈엘르〉와 〈글래머〉 등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멜라니아 트럼프의 모델 및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경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딸이 계모를 암묵적으로 ‘디스했다’는 평도 없지 않다.
이반카의 남편은 하버드 대학교 출신 엘리트, 자레드 쿠시너로 두 사람은 2009년 결혼식을 올렸다. 이반카와 자레드 사이에는 3명의 자녀가 있는데 장녀 아라벨라 로즈는 2011년생이며 장남 조셉 프레데렉은 2013년생, 차남 테오도르 제임스는 2016년생이다.
많은 언론들이 부인인 멜라니아보다 딸인 이반카의 도움이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오른 이후에도 이반카가 정치적으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당선이 확정된 이후에 연이어 러시아 정부와 관련된 스캔들이 터지고 있기에, 앞으로도 트럼프가의 여인들이 헤쳐나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것 같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어쩌면 앞으로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만든 쓰레기 같은 발언을 처리하는 것이, 그의 부인과 딸 몫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앞으로의 행보보다, 그와 연관된 여인들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pertwo’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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