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WTO 아닌 미국법 따라야”… 한국에 징벌관세 매길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3일 03시 00분


[美-中 ‘한국 흔들기’]美무역대표부 “한미FTA 재검토”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일(현지 시간) 취임 후 처음 발표한 무역정책 어젠다는 ‘세계 무역은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언으로 해석된다. 교역을 계속하려면 ‘미국법’을 따라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앞으로 미국이 한국에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청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징벌적인 관세를 매길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은 무역 분쟁을 조정하는 세계무역기구(WTO)마저 무시하고 있어 분쟁 해법이 더욱 복잡해지게 됐다. 》
 

미 무역대표부(USTR)는 이날 발표한 무역정책 어젠다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접근법을 촉구했고 행정부는 그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새로운 무역정책 집행 의지를 내비쳤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부정한 데 이어 무역정책 방향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지우겠다는 뜻이다.

보고서에 명시된 무역정책 우선순위는 △국가 주권 수호 △미국 무역법의 엄격한 집행 △외국이 시장을 개방하도록 모든 영향력 동원 △새롭고 더 나은 무역협정 협상 등이다. USTR는 “미국 국민은 WTO의 판정이 아닌 미국법의 지배를 받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정책과 관련해 미국 주권을 적극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WTO의 분쟁 해결 절차 등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불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혀 무역분쟁을 양자 협상으로 풀어 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자유무역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WTO 산파 역할을 했던 미국이 WTO 체제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기조는 오바마 행정부 때의 USTR와 대비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교역국과 종종 무역분쟁을 벌였지만 WTO의 권위를 존중해 정해진 틀 내에서 분쟁 해결을 모색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정책을 이렇게 뜯어고치는 이유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3170억 달러(약 358조2100억 원)였던 미국 제조업 무역적자는 지난해 6480억 달러로 약 100% 증가했다.

USTR는 한국과의 무역에서 생긴 적자를 지적하며 한미 FTA 재협상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USTR는 “한미 FTA 발효 직전 해인 2011년부터 지난해(2016년)까지 미국 제품의 한국 수출은 12억 달러(약 1조3560억 원) 감소한 반면 한국 제품의 미국 수입은 130억 달러(약 14조6900억 원) 이상 증가했다”며 “이런 결과는 두 말 할 것 없이 미국 국민이 이 협정에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더라도 협정이 당장 수정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FTA 불균형 조항 때문에 미국이 적자를 본다는 점이 규명돼야만 협정문을 고치는 재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의 결과 미국에 불평등한 조항이 발견되면 미국 측은 농산물, 쇠고기뿐만 아니라 환경, 노동, 지식재산권 등의 재협상을 포함해 자국 이익에 맞는 시장 개방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이 한미 FTA 재협상 전에 돌연 무역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뉴욕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현행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의회와 형식적인 협의만 거친 뒤 특정국에 관세 인상을 선포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다양한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한국 등) 상대국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FTA 재협상 압박 수단으로 ‘슈퍼 301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슈퍼 301조는 ‘람보 301조’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공격 수단으로 삼는 미국 무역법 조항이다. 상대국이 불공정한 무역으로 미국에 피해를 주면 미국이 광범위한 영역에서 보복하도록 허용한다.

최근 수출 실적이 좋아진 한국에서 미국에 대한 흑자가 점차 늘어나면 미국 기업이 직접 한국 기업에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미국이 한국 정부의 보조금이 과하다거나 ‘덤핑’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반덤핑 과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참에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FTA를 같이 묶어 한번에 처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두 사안을 연결해 방위비 분담금은 올려주고 FTA에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 / 세종=천호성 기자 / 뉴욕=부형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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