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을 겨냥한 미국과 중국 정부의 강성 발언들이 쏟아지면서 국내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올해 경영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 악재까지 겹쳐 ‘이중고’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미중 움직임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곳은 자동차업계다. 중국 런민일보 자매지인 환추시보는 현대자동차를 사드 배치로 인한 제재 가능성이 있는 대상으로 지목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중국에서 114만2000여 대를 판매했다. 현대차 전체 판매량의 23.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장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발언도 자동차업계에는 ‘발등의 불’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 규모는 한미 FTA 발효 직전인 2011년 58만8000여 대에서 지난해 96만4400여 대로 64%나 늘었다.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질 경우 미 정부는 무역 적자가 큰 자동차 부문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게 뻔해 수출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 인상으로 가격 인상 요인이 생기면 일본, 유럽 자동차업체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 가전 및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아직까지는 큰 위협을 느끼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환추시보가 현대와 함께 사드 보복 대상으로 지목했지만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는 한미 FTA와 상관없이 무관세 무역이 이뤄지고 있어 한미 FTA 재협상으로 인한 피해도 거의 없다.
다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반한국 기업 정서가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반한 감정은 소비재 판매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중국 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013년 19.7%(1위)에서 지난해 5.0%(7위)로 추락했다. 아직 중국에 스마트폰 판매를 위한 오프라인 유통망도 확보하지 못한 LG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현지 진출을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다.
중국의 전방위 압박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더해져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점도 기업들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올해 10월 만기되는 한중 통화 스와프 연장이 무산될 경우 환율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이 금융 제재로 사드 보복 수위를 높이는데 미국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까지 더해지면 한국 기업은 경영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