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일 탄도미사일 4발을 발사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역학과 안보 지형이 다시 한번 출렁이고 있다. 특히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북핵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달 중 한국 중국 일본을 방문키로 한 상황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라는 변수가 터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간 패권 방정식도 더 복잡해지고 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 구상은 더욱 빨리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다. 트럼프 백악관은 현재 선제타격,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부터 북-미 대화까지를 포함한 대북 정책을 구상 중이다. 북한의 도발로 자연스레 강경 드라이브 기조로 정리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매우 화가 났다’고 공개 경고하고 전술핵 재배치 검토까지 공개됐는데도 북한이 보란 듯이 미사일을 발사한 만큼 대화 카드는 급속히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북한은 물론이고 대북 제재, 사드 배치를 놓고 벌이는 중국과의 신경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게 미 정부의 분위기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까지 압박하고 나섰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대변인 대행은 “모든 국가가 동원 가능한 영향력 있는 채널과 수단으로 도발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북한과 그의 조력자들에게 분명히 보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에 미온적이고 사드 배치를 놓고 대한(對韓) 보복 조치를 일삼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북한 미사일 발사 소식이 전해지자 일요일인 5일에도 미사일의 제원과 사거리 등 관련 정보를 교환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엔 관계자들은 “미국이 유엔 안보리 회의 등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을 어느 때보다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한미와 사드 배치 힘겨루기에 나선 중국은 이번 도발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모양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한미 군사훈련에 그 책임을 돌렸다. 그는 “북한을 겨냥한 한미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을 주목하고 있다”면서 “(한국 미국 북한 등) 각 측은 자제를 유지해야 하고 지역 정세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도발은 여러 면에서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측면이 많다. 중국은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을 베이징으로 불러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외교적 수세에 몰린 북한을 지원했지만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해 중국을 수세로 몰았다. 중국은 최대 정치 행사 중 하나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3일 개막돼 열리고 있는 시점에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다음 달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도발은 미국이 중국의 대북 제재 이행을 압박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도 중국의 당혹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분석했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중국이 지난달 19일부터 북한의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한 것에 대한 노골적 불만 표시로도 해석되지만 중국 당국은 전선을 평양이 아닌 한미 양국에 집중하기로 한 모양새다. 겅 대변인은 롯데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사드 보복에 대해 “우리는 한국 기업을 포함한 외국 기업이 중국에 와서 투자하는 것을 환영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법에 따라 보호할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외국 기업의 중국에서의 경영은 반드시 법과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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