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구심력 약화에 몸값 올라간 푸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7일 03시 00분


‘反EU’ 지도자들 잇따라 러 방문… “푸틴과 함께 테러리즘에 맞설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반(反)유럽연합(EU) 성향의 세계 지도자들을 잇따라 만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9일)와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10일), 프랑스 대선 1위 후보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24일)가 그들이다. 27∼28일에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여덟 번째 정상회담을 한다.

유럽과 중동의 지도자들이 EU 최대의 적인 러시아로 몰려드는 건 그만큼 EU의 구심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르펜 후보의 파격적인 친러 행보는 EU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만한 수준이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마저 EU에 등을 돌리면 유럽 통합의 의미 자체가 무색해진다.

르펜 후보는 24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나 “당선되면 EU의 러시아 제재를 신속히 철회하겠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 정보를 공유해 함께 테러리즘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극우파 전선에 프랑스도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최근 몇 년간 푸틴, 도널드 트럼프, 나렌드라 모디(인도 총리)의 세계 등 새로운 세계가 급부상하고 있다”며 “난 이 위대한 국가들과 협력의 비전을 공유할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은 “당신이 급성장하고 있는 유럽의 신진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인물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며 르펜 후보를 치켜세웠다. 대선 후보에 불과한 르펜 후보를 1시간 30분 동안 만나주는 이례적인 환대를 베풀었다.

EU의 또 다른 핵심 국가이자 9월 선거를 앞둔 독일의 극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당수도 지난달 러시아를 깜짝 방문해 푸틴 대통령 측근 등 주요 정치인을 두루 만났다. AfD는 반EU, 반이슬람을 내세우는 극우 정당으로 지지율은 10% 미만이지만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EU에 불만인 독일 내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26일 열리는 불가리아 총선에서는 친러 성향의 사회당이 집권여당인 유럽개발당(GERB)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사회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고 러시아와 에너지 개발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EU 회원국 중 최빈국인 불가리아에서는 ‘EU의 2등 시민’이라는 불만의 반작용으로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 기류가 늘고 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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