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놓고 있다”며 대북 군사행동 불사 방침을 연일 시사하면서 실제로 행동에 나설지가 한반도 정세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는 27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군사 옵션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미국의 대북 군사 옵션 실행 가능성 등을 점검했다.
○ “가능성 낮지만 대비해야”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군사행동의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미국이 외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 중 가장 수위가 높은 군사 옵션 카드를 내세워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 연합군의 최첨단 정밀 타격 전력으로 북한을 언제든 초토화할 수 있는 만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나 추가 핵실험을 하는 대신 협상장으로 나오라며 벼랑으로 모는 전략인 셈이다.
한반도 정책을 실무적으로 책임질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임명되지 않는 등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미완성이라는 점도 미국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낮추는 대목이다.
군사 옵션 카드는 핵 보유 시도 국가가 등장할 때마다 미국이 사용하던 압박 전략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어떤 조치를 취할지 특정하지 않으면서도 핵 완성 시 후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을 계속 써 왔다”며 “트럼프도 고전적인 억제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해 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군사 옵션 카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원칙적인 것으로 북한이 운신할 폭을 최대한 좁히려는 전략”이라면서도 “국제 안보에서는 100%라는 건 없고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기 때문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지금은 최우선 순위… 곧 밀릴 수도”
미국 정부가 26일(현지 시간) 새 대북 기조를 발표하며 “북핵 문제는 외교 정책 최우선 순위”라고 발표한 것은 북핵 문제를 대하는 미국의 시급함을 보여 주고 있다.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중동 문제와 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미국은 지금까지 북핵 문제가 커지는 사실을 알면서도 1순위에 올려놓지 못했다”며 “이제야 미국이 북핵 문제에 외교·군사력을 집중할 여력이 생긴 만큼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북핵 해결을 외교 정책 최우선 순위로 두는 기간이 길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동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가 집권 초기여서 북핵 문제를 새롭게 보고 심각하게 여기는 것이지 중동 문제 등 대외 문제와 조세 문제 등 국내 문제가 불거지면 또다시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핵 시설을 얼마나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렸다. 이 교수는 “외과 수술식 정밀 타격으로 북한 핵 개발을 지연시킬 순 있지만 숨겨진 핵시설이 끝없이 발견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신 전 차장은 “군사 옵션 사용 시 북한 내 고정식·이동식 미사일 발사 시설 중 95%를 단기간에 제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군사 옵션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북-미가 ‘핵 동결’ 협상을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흐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새 대북 기조를 발표하면서 협상의 문을 열어 놓겠다며 강약 조절에 나서는 모습을 보인 점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로 협상을 마무리하게 되면 한국은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은 더 높아지는 동시에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의 군사행동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큰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재와 군사행동의 방향과 속도를 최소한 우리가 조절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 “전술핵무기 재배치 효용성 낮아”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은 현실적 제약이 크고 군사적 효용성도 낮다는 견해가 많았다. 신원식 전 차장은 “유사시 괌이나 일본 오키나와 상공에서 B-52나 B-2 폭격기로 150∼300kt(킬로톤·1kt은 TNT 1000t의 폭발력)급 전술핵 수십 발을 (북한에) 날릴 수 있는데 굳이 전술핵을 배치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상현 본부장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견지해 온 비확산 기조를 뒤집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반면 전술핵 배치가 정치·외교적 효용성을 거둘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황 교수는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면 중국의 대북 핵 문제 접근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국내적으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달래는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의 전략핵을 미국의 전술핵으로는 막지 못한다는 일부 대선 주자의 주장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신 전 차장은 “미국이 전략폭격기에서 발사하는 전술핵은 북한이 갖고 있는 핵보다 위력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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