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초 외교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만큼 국정 경험이 충분하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 취임 당시 주한 미국대사(2001년 2월∼2004년 8월)였던 토머스 허버드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장(74·사진)은 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문 대통령 취임 후 워싱턴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관계 갈등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허버드 전 대사는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 정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며 한국 진보 정치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워싱턴 지한파 인사로 평가받는다. 이하는 일문일답.
―워싱턴에서도 많은 이들이 문 대통령 탄생을 예상하면서도 새 정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 걱정의 실체는 뭔가.
“문 대통령은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인식되고 있다. 워싱턴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초 한미관계를 급격하게 바꾸려 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문재인 당선이 ‘노무현 시즌 2’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로서 문 대통령을 지켜봤는데 역시 같은 우려를 갖고 있나.
“내가 대사이던 시절 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이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결론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시즌 2’로만 보는 것은 합리적인 평가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시 별 국정 경험이 없었지만, 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지내 국정 운영 경험이 있다. ‘노무현 정신’은 계승하겠지만, 주요 이슈를 다루는 정치적 기술은 다를 것이다. 임기 초에 한미관계, 북핵 이슈를 성급하게 다루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면 김정은을 가장 먼저 만나겠다고 했고, 지금 같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엔 부정적이다. 전면적 대북 압박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트럼프 대통령도 그랬지만, 선거 기간 공약과 집권 후 집행은 반드시 일치하는 게 아니다. 물론 문 대통령은 이전 보수 정권보다 유화적인 대북 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그렇다고 사드를 당장 철수하거나 트럼프를 만나기 전 김정은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은 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차분히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요 한반도 이슈는 미국과 대화해 오히려 한미 간 케미스트리(chemistry·관계)를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어떻게 보나.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는 사드와는 또 다른 이슈다. 개성공단은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의 핵개발 재원(財源) 중 하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단독으로 개성공단 재가동을 결정하면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와도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조급하게 해결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신뢰를 구축하려면 무엇이 가장 시급한가.
“조속한 정상회담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일각에선 정권 인수 기간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도 하지만, 그럴 경우 한미관계를 놓고 무수한 억측이 쏟아질 것이고 그사이 북한이 추가 도발할 수 있다. 빠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관계가 여전히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발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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