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금은 北 ‘압박’… 조건되면 ‘관여’해 평화 만들 의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9일 03시 00분


[특사 외교]홍석현 특사 만나 대화 가능성 시사 “한미동맹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 궁서체 한글 친서 보고 “아름답다”
홍석현 “사드절차 논란… 국회논의 불가피” 맥매스터 “상황 잘 알고있으며 이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간) 북핵 기조와 관련해 “현재는 압박과 제재 단계에 있지만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 정책으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특사인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을 15분간 만나 “앞으로 문 대통령과 함께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긴밀한 협조로 결과를 만들어 내기를 기대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특사단이 전했다.

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새 정부의 대표단과 처음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 자신의 대북정책인 ‘최고의 압박과 관여’에 따라 대북 압박과 제재를 우선시하면서도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인다면 대화에 나설 뜻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다는 의미가 있다. 취임 후 북핵 문제와 관련해 ‘평화’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한 것도 처음이다.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 사건과 관련해 연방수사국(FBI)에 수사 중단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특검 수사 개시 등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한국 특사단을 만난 것은 북핵 해결을 위해 한미 간 정상외교 복원이 시급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先)압박, 후(後)대화’라는 대북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와 호흡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한미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말한 뒤 “(10일)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글 궁서체로 적힌 문 대통령의 친서를 받고서는 “너무 아름답고 멋있다. 감사의 말을 잘 전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접견엔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외에 예정에 없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보좌관도 배석했다.

이날 접견에서 한미 간의 첨예한 이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분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만남은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상견례 자리인 만큼 “한미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등의 트럼프 대통령 발언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 전까지 워싱턴에 팽배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씻겼다고 볼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접견에서 북핵과 관련해 ‘평화’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포함해서 한미동맹 문제를 긴밀히 협의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는데, 이는 다음 달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 사드 문제 등 한미 간 쟁점 현안이 의제에 오를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 특사는 이어 맥매스터 보좌관과 가진 40여 분의 별도 면담에선 사드 문제를 언급했다. 홍 특사가 먼저 “민주적 절차에 관한 논란이 있다. 국회에서 (비준 절차 등)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말하자 맥매스터 보좌관은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acknowledge) 있으며 이해한다(respect)”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사드의 국회 비준 추진을 존중한다기보다는 이런 논의가 있는 상황을 이해한다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이날 만남을 계기로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대방의 카드를 읽기 위한 한미 간 탐색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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