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간첩혐의자의 해외서버 이메일 증거 무효 판결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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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지령문 속 이메일 주소로 교신… 국정원 계정 압수수색해 증거 제출
고법 “서버있는 中과 사법공조 필요”… 관련 부분 무죄로 1년 감형
7월 다른 사건선 “적법 증거” 판결… 공안당국 “간첩수사 말라는 얘기” 반발

북한이 보낸 암호 지령문 속에서 찾아낸 중국 이메일 계정과 비밀번호로 확보한 이메일을 법원이 위법한 증거라며 채택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공안당국은 “간첩 수사 현실을 모르는 판결”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는 지난달 13일 북한 공작원에게서 지령과 활동비 1만8900달러를 받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구속 기소된 목사 김모 씨(53) 사건에서 김 씨가 북한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씨에게는 1심의 징역 4년보다 낮은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옛 통합진보당 등에서 활동했던 김 씨는 최후 진술에서 “위대한 촛불혁명 만세! 위대한 조국통일 만만세!”를 외쳤던 인물이다.

법원이 기각한 증거는 김 씨가 중국에 서버를 둔 이메일 계정으로 북한과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이다. 국가정보원은 김 씨의 차량에서 압수한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에서 암호화된 지령문을 발견했다.

국정원은 지령문에 담긴 이메일 계정에 접속해 김 씨가 북한과 교신한 사실을 확인했다. 김 씨는 2013년 7월 7일 중국 인터넷 포털 ‘시나닷컴(Sina.com)’에 접속해 북한의 대남공작부서인 225국 소속 공작원에게 암호화한 이메일을 보냈다. 김 씨는 “혁명적 인사를 드리겠다. (중략) 조직은 국정원 대선비리 사건에 기독교계 전체 대책기구에 참여하는 등 대응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재판부는 “이메일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계정, 비밀번호)을 확보했더라도 제3의 장소인 해외 이메일 서비스 제공자의 해외 서버까지 압수수색 범위를 확장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대한민국의 사법관할권이 미치지 않으므로 형사사법 공조 등 방법으로 (이메일 내용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김 씨의 이메일 내용을 증거로 쓰려면 중국 정부의 공식 협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안당국은 “간첩 수사를 하지 말란 얘기냐”고 반발하고 있다. 간첩들은 대개 수사망을 따돌리기 위해 해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다. 김 씨처럼 북한과 가까운 나라의 이메일 계정을 쓰면 정식 사법 공조로는 이메일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같은 법원에서 이달 정반대의 판결이 나와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는 5일 이른바 ‘PC방 간첩’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적법하게 취득한 계정 정보 등으로 확보한 내용은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판시했다.

배석준 eulius@donga.com·허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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