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13일 새벽잠을 깨우는 북한 당국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묻지 마 초청’으로 평양에 들어간 외신 기자 200여 명이 뜬눈으로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다. 당시 4월은 15일 태양절(김일성 탄생일)부터 조선인민군 창건 85주년(27일)까지 다양한 기념일이 몰려 있어 6차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시기라 전 세계가 바짝 긴장하며 북한을 주시했다.
하지만 큰 기대와 달리 이날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여명거리 준공식을 공개했다. 여명거리는 김정은 정권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반발하면서 평양에 조성한 신시가지로, 70층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빌딩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라”는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공사에 박차를 가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명거리 깜짝 홍보는 ‘제재에도 끄떡없다’는 북한의 메시지였다.
북한의 상위 1%인 이른바 ‘평해튼’이 누리는 일상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지난해 5월 워싱턴포스트(WP)가 만든 이 신조어는 경제난 속에서도 호사를 누리는 이들의 세상을 두고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뉴욕 맨해튼에 빗댄 표현이다. 평양의 이 신흥 부유층은 1인분에 48달러(약 5만4000원)짜리 1등급 쇠고기 스테이크를 썰고, 9달러(약 1만100원)짜리 아이스모카커피를 마신다. 몸매 관리를 위해 헬스클럽에서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요가도 하고, 글로벌 의류 브랜드인 자라와 H&M 옷도 즐겨 입는다. 더우면 물놀이장에서 헤엄치고, 눈이 오면 마식령 스키장을 찾는 등 철마다 즐길 레저도 다양하다.
WP는 “북한에서 가난은 더 이상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평해튼의 부유층이 날씬해지기 위해 운동을 하는 와중에도 빈곤층을 포함한 나머지 99%는 식량 부족 등으로 허덕이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화를 향유하는 북한 특권계층은 극소수에 불과해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는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의 명분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 정권보다 빠른 속도로 호화 시설 건축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대북 제재 실효성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한 대외 홍보용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런 호화층의 삶이 북한 체제에 근본적인 불안 요인으로 김정은 정권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반인들이 부유층을 보고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이 커지면 살인, 강도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져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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