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한드는 정치 예언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8일 03시 00분


미리본듯 족집게 장면 화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5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벌어지는 미국 정치 상황을 리얼하게 예측한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5. 넷플릭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벌어지는 미국 정치 상황을 리얼하게 예측한 넷플릭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5. 넷플릭스 제공

“사람들은 우리가 뉴스 헤드라인에서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우리가 먼저 생각한 것이라구요.”
 
올해 5월 미국 배우 케빈 스페이시는 스티븐 콜베어가 진행하는 미국 CBS ‘레이트 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주연한 넷플릭스 인기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시즌 5 공개를 앞두고 가진 자리였다. 러시아 내통 의혹에 휘말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하는 등 어느 때보다 드라마틱한 현실이 워싱턴에서 벌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미국과 한국의 정치 상황이 요동친 올해 상반기 방송된 몇몇 드라마들이 현실 정치에 대한 ‘예언서’를 방불케 할 만큼 예지력 넘치는 장면들을 내보내면서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5월 말 공개된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5’는 현실과 완전히 똑같은 상황을 예측했다. 테러 조작 및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며 극중 FBI 국장이 의회 청문회에 선 것. 현실의 코미 국장은 드라마가 공개 후 약 열흘 뒤 마치 드라마처럼 실제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다. 극 중 대통령 프랜시스 언더우드가 탄핵 위기에 몰리자 부통령으로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된 영부인 클레어에게 자신에 대한 사면을 종용하는 장면은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이달 말 ‘셀프 사면’ 카드를 언급한 것과 겹쳐 보인다.
 
배우 키퍼 서덜랜드가 주연한 미국 ABC 드라마 ‘지정 생존자(원제 Designated Survivor)’는 ‘휴머니즘’과 ‘원칙주의’를 내세운 판타지에 가까운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워싱턴의 정치 현실을 드러낸다.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읽던 날 의회가 폭파되는 사상 초유의 테러가 벌어져 별 볼일 없는 관료 톰 커크먼이 대통령으로 취임 선서를 한다. 테러 이후 커크먼이 겪는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 구타와 체포, 미시간 주지사의 계엄령 선포 요구 등은 트럼프 정부 이후 계속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반이민 행정명령을 연상케 했다.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검찰과 경찰조직의 실체뿐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방산비리 수사까지 다룬 드라마 ‘비밀의 숲’. tvN 제공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검찰과 경찰조직의 실체뿐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방산비리 수사까지 다룬 드라마 ‘비밀의 숲’. tvN 제공
국내에선 이달 15일 방송된 tvN 사전제작 드라마 ‘비밀의 숲’ 11화에서 제작진이 미래를 내다보기라도 한 듯 방산비리를 소재로 다뤄 리얼리티에 ‘예지력’까지 더했다는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드라마 방영 전날인 14일 검찰이 방산비리 혐의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실제로 압수수색 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현실의 ‘싱크로율’과 관계없이 미국에서는 트럼프 등장 이후 정치 드라마가 오히려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스캔들’, ‘지정생존자’, ‘마담 세크리터리’ 등 인기 정치물의 인기는 예전만 못한다는 평이 우세하다.
 
국정 농단사건을 겪은 한국에서는 검찰과 언론, 정치권 스캔들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제작이 활발하지만 리얼리티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는 어느 때 보다 높아져 제작진의 고민도 깊어졌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충격적인 정치권의 현실을 접한 뒤로 힘의 논리, 선악의 대결을 다룬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작품의 리얼리티와 선명한 주제의식에 대한 요구도 함께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하우스 오브 카드#드라마#예언서#드라마와 현실#싱크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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