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연화장 장례식장. 열여섯 살 상주(喪主)의 시선이 화장장을 향했다. 부모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고생만 하고 가서 어떻게 하냐”는 오열이 터져 나왔다. 어린 상주는 눈물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충남 천안시 천안∼논산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고속버스 연쇄 충돌사고로 숨진 이모(48), 엄모 씨(39·여) 부부의 발인이 이날 치러졌다. 고교 1학년인 아들 이모 군은 여동생(12)과 함께 부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작별 인사를 하는 이 군의 얼굴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드러났다.
“나와 동생은 부모님을 잃었다. 한 가족이 풍비박산이 났다. 그런데 사고 운전사는 다쳤다는 이유로 사과 한마디 없다. 금호고속(사고 버스업체) 책임자는 얼굴도 못 봤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다.”
이 군은 7월 일어난 경부고속도로 광역급행버스(M버스) 추돌사고와 똑같은 참사가 되풀이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민에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두 달 만에 똑같은 비극이 일어났는데 공무원 누구도 책임지는 모습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사고 후 열린 당정협의에서 김 장관은 “다시는 졸음운전 사고로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이 군의 외할아버지 엄모 씨(67)는 “정부와 버스회사 어느 곳도 진심이 담긴 사과가 없었다”며 “같은 사고가 계속 일어나면 사람들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딸과 사위의 억울한 죽음이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이날 발인 후 이 씨 부부의 유해는 수원연화장 추모의집에 안치됐다. 올 3월 세상을 떠난 이 씨 아버지의 유해가 안치된 바로 옆자리다. 엄 씨의 언니(47)는 “남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씨의 친구라고 밝힌 중년 남성 2명은 이 군 남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라”며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천안∼논산고속도로 사고 이틀 후인 4일 국토부는 “모든 고속버스 업체를 상대로 특별교통안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연내 모든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도 전방충돌경고장치(FCWS)와 차로이탈경고장치(LDWS)를 장착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대책이 두 달 전 경부고속도로 사고 후 내놓았던 안전대책과 똑같다는 것이다.
당시 국토부는 안전대책 시행 대상에서 고속버스를 제외했다. 지난달까지 운수업체 201곳을 대상으로 관계기관 합동점검을 실시할 때도 광역·시외버스와 화물차량만 대상이었다. 고속버스를 운행하는 대형 운수업체는 빠졌다. 그러다 이번에 사고가 나자 뒤늦게 부랴부랴 안전대책 시행 대상을 확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속버스 업체는 안전관리 여건이 좋을 것으로 생각해 점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경위를 수사 중인 충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고속버스 운전사 신모 씨(59)는 여전히 “사고 당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졸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씨는 사고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다. 사고가 난 버스에는 회사가 자체적으로 설치한 차로이탈경고장치가 있다. 그러나 전방충돌경고장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휴식시간 준수를 비롯해 신 씨의 근무일지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며 “디지털운행기록계(DTG) 관리 등 회사의 전반적인 안전 실태를 조사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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