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 80분… 소변 참느라 식은땀, 아침에 물 안먹여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3일 03시 00분


[모두를 위한 ‘특별한 학교’]<上> 장애인학교 통학버스 타보니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궁동 정진학교에서 교사들이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 학생의 스쿨버스 탑승을 돕고 있다. 이 학교엔 장거리 통학생이 많아 통학버스 7대를 운영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궁동 정진학교에서 교사들이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 학생의 스쿨버스 탑승을 돕고 있다. 이 학교엔 장거리 통학생이 많아 통학버스 7대를 운영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장애인과 함께 가는 길’은 멀었다. 다른 장애인 학생은 소리를 지르거나 뛰면서 하교 버스에 올랐지만 자폐성장애 1급 문성준(가명·19) 군의 얼굴에선 특별한 표정이나 말을 찾을 수 없었다.

11일 오후 2시 48분 지적장애와 지체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서울 구로구 궁동 정진학교 하교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버스에 올라 늘 그랬다는 듯 일곱 번째 줄에 앉은 문 군은 기자가 인사를 건네도 그냥 창밖의 먼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 타서도 어깨에 가방을 멘 채 대화도 없이 지루하게 55분을 달리고 나서야 생활지도사의 안내로 문 군이 버스에서 내렸다. 곧바로 집에 가는 게 아니라 집 근처의 복지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부터 문 군을 안내한 활동보조인의 첫 번째 일은 화장실 데려가기였다. 활동보조인은 “버스 타고 오는 시간이 길다 보니 당연히 용변을 참느라 힘들었을 테고 더구나 의사표현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버스에서 내린 문 군이 왜 식은땀을 흘리는지 몰랐지만 볼일을 참느라 힘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서울시내 장애인학교가 고작 29곳에 불과하다 보니 상당수 장애인 학생은 문 군처럼 장거리 통학을 감수해야 한다. 문 군이 아침에 등교할 때는 70∼80분 정도 통학버스를 타야 한다. 집 앞에서 곧장 학교로 가면 이보다 훨씬 빠르겠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학생을 태우려고 빙빙 돌다 보니 통학버스 운행시간은 길 수밖에 없다. 이 학교 학생 중 95%는 통학버스나 자동차, 대중교통을 타고 통학한다. 통학버스 중에는 직선거리로 9km 넘게 떨어진 여의도까지 가는 차량도 있다.

이런 버스에 아이를 태우는 학부모들은 더 속을 태우고 있다. 정진학교 학부모 주모 씨(58·여)는 “지적장애 자녀를 둔 많은 엄마가 아침 식사 때 아이에게 물을 반 컵만 마시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하준우(가명·20) 씨가 2년 반 동안 정진학교에 다니며 하굣길에 스쿨버스에서 두 번 용변을 봤다는 사실을 긴 한숨과 함께 털어놨다.

장애 없는 사람은 알아차릴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도 있다. 학교 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보니 장거리 통학을 감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습관적으로 용변을 보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 부모는 학교든 어디든 외출하게 되면 틈나는 대로 자녀를 화장실로 데려간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이동하는 자체를 불안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용변 참기를 어려워하는 악순환이 생긴다는 말이다.

장애인 학생의 힘들고 긴 등·하굣길은 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이유가 된다.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는 “아이가 긴 등교시간에 지쳐 고등학교 1학년 때 수업시간 내내 잠만 잤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집중력을 높이기 어려운 장애학생이 신체적으로 피곤하게 지내다 보니 당연히 학습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는 뜻이었다.

일각에선 운행시간이 긴 만큼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통학버스라 다른 차량보다 엄격히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있지만 지난해에는 정진학교 통학버스가 앞서 가던 승용차 급정거 때문에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다. 몸을 가누기 힘든 학생이 적지 않아 작은 교통사고에도 큰 부상을 입을까 우려하는 학부모들은 늘 노심초사다.

문 군의 한 살 위 형에게는 장애가 없다. 문 군의 형이 다녔던 초중고교는 모두 집에서 걸어 10분 이내 거리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옛 공진초교 터는 문 군의 집에서 자가용으로 20분 거리에 있다. 문 군의 어머니 노모 씨(47)는 “성준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강서구에 특수학교가 새로 생길 거란 이야기가 있었다”며 “기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거라 금방 문을 열까 기대하며 10년 넘게 살았던 터라 강서구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통계로도 서울시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평균 통학시간은 꽤나 길다. 자가용이나 통학버스를 이용하는데도 편도 30분 이내는 59% 정도였고 30분∼1시간은 36%를 차지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장애인#통학길#자폐성장애#지적장애#정진학교#하교버스#운행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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