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정부가 31일 한중 관계 개선에 전격 합의한 것은 2050년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비전을 드러낸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공산당 지도부가 미국과의 동북아 전략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갈등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인 국가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폐막한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전 시 주석 집권 2기 대외정책 방향을 검토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스인훙(時殷弘) 런민(人民)대 교수는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은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중한 관계가 장기적으로 악화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는 일제히 중국 외교부가 이날 오전 9시(현지 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한중 관계 개선 관련 한중 발표문 전문을 보도했다. 시 주석이 당 대회에서 협력과 윈윈을 강조하는 ‘신형국제관계’를 천명한 만큼 한중 관계 개선은 시진핑 2기의 첫 외교 성과로 선전될 가능성이 높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확하고 일관되고 변화가 없다”고 못 박았다. 스 교수는 “중국 정부는 여전히 결연히 사드를 반대한다”며 “중한 합의문이 어떻든 (사드 철수를 요구하는) 중국 정부의 마음속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시보도 31일 사설에서 “사드가 해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중국이 바라는 것은 사드가 중국에 위해를 미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뿐 아니라 한국에서 철수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사드 철수를 한국에 대한 보복이나 압박으로 이뤄낼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는 개선하면서도 사드 문제는 미중 관계 속에서 해결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란 설명이 나온다. 환추시보는 “이(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만든 쪽은 미국이기 때문에 철저히 (사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훨씬 큰 교섭이고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런민일보는 이날 1면 톱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매우 기대한다”며 “중-미가 서로 이익과 우려를 고려하고 적절히 이견과 갈등을 제거하기를 원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했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동북아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구조를 약화시키려는 중국은 한국을 다시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는 게 급선무다.
이런 방향 설정 과정에서 중국은 관계 개선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에 ‘3NO’ 약속을 얻어냈다.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날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공개 발언을 통해 중국에 약속한 것으로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 전략 경쟁에서 한국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사드 문제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로 한국이 미국에 치우치는 것이 중국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내부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화춘잉 대변인은 한국에 “언행일치”를 촉구했다.
환추시보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MD 전략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한국이 깨달았을 것이다”라며 “중국은 한국이 한미 군사동맹의 범위를 한반도 문제에 국한시키면서 (미중 간) 대국 게임에서 중립 입장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지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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