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러시아 1891∼1991/올랜도 파이지스 지음·조준래 옮김/456쪽·1만8000원·어크로스
‘두둥.’
솔직해지자. ‘소련’과 관련해 읽은 책 몇 권 안 된다. 그나마 옛 중역본들, 안 그래도 ‘…스키’ 이름 지명이 헷갈리는데 문장까지 어려워 더 헤맸다. 그런데 2013년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도달했으니. 이름 하여 ‘속삭이는 사회’(교양인). 스탈린 시대 내밀한 가족사를 촘촘히 엮은 걸작이었다. 2권짜리 두툼한 책이건만 어찌 그리 감동적인지. 꼭 읽어보시라. 참고로 그해 동아일보가 뽑은 ‘올해의 책 10’에도 들었다.
두둥 하고 북을 울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런던대 교수인 저자는 러시아 현대사의 권위자인건 둘째 치고 글을 참 잘 쓴다. 그런 그가 속삭이는 사회에 이어 다시 한 번 러시아 100년사(史)를 정리해준다니 어찌 아니 기쁠쏘냐. 찐득한 침 묻혀 가며 페이지를 넘겼다.
저자가 밝힌 대로, 그간 러시아혁명은 1917년 전후에만 초점이 맞춰진 감이 없지 않다. 스탈린 시대 등 다른 시대도 그냥 당대로만 취급되고 설명됐다. 하지만 러시아혁명은 따로국밥이 아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전체 흐름에서 봐야 한다. 이를 위해 볼셰비키 세대와 스탈린 엘리트 세대, 1960년대 세대의 부침과 상호작용을 따져보는 건 흥미로운 작업이다.
다만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무래도 ‘속삭이는…’이 줬던 전율엔 미치지 못한다. 100년을 한 권에 욱여넣다 보니, 살짝 교과서 요점정리를 마주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아무리 소품이라도 장인의 솜씨야 어디 가겠나. 읽어 두면 어디 가서 이쪽 화제가 나왔을 때, 꽤나 통찰력 있는 척 폼 잡을 수 있겠다. 뭐, 그것도 분명 ‘좋은’ 책의 효용가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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