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외유내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일 03시 00분


<27> 음나무

뾰족한 가시를 가진 음나무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
뾰족한 가시를 가진 음나무는 사악한 기운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
두릅나뭇과의 갈잎큰키나무 음나무의 다른 이름은 엄나무다. 엄나무는 줄기와 가지에 가시가 많아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음나무를 한자로 엄목(欕木) 혹은 자동(刺桐) 및 자추(刺楸)라고 부른다. 자동과 자추는 가시를 가진 오동나무와 개오동나무라는 뜻이다. 음나무를 오동나무 혹은 개오동나무에 비유한 것은 잎이 닮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 제12권 고율시(古律詩) 중 ‘재차 용담사(龍潭寺)에 노닐다 내가 남(南)으로 내려왔을 때 잠시 병(病)을 요양하던 곳이다(重遊龍潭寺 予南行時病寓處也)’에서도 자동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본초강목과 식물명실도고장편에는 음나무를 해동(海桐) 혹은 해동피(海桐皮)로 기록하고 있다. 음나무의 이름에 ‘해’를 붙인 것은 이 나무가 주로 남해(南海) 산골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음나무의 가시는 어린 가지일수록 뾰족하다. 그래서 음나무의 어린 가지에 달린 가시를 보는 순간 강한 위협을 느낀다. 이처럼 음나무가 어린 가지에 강한 가시를 만드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사람들도 음나무의 가시가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조선 후기 경북 봉화 출신 강진규(姜晉奎)의 ‘역암집(櫟菴集)’ ‘잡저(雜著)’ ‘유엄목문(諭欕木文)’은 음나무가 지닌 ‘벽사(辟邪)’의 의미를 잘 드러낸 글이다. 음나무의 벽사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믿음은 농촌 마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나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음나무 천연기념물은 음나무의 벽사에 대한 믿음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강원 원주시 성남리 성황림, 경남 창원시 창원신방리음나무군, 충북 청주시 오송읍 공북리의 음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나무 신목이다. 원주 성남리의 성황림에는 다양한 나무가 살고 있지만 그중 음나무는 전나무와 함께 당집의 수호신이다. 내가 만난 세 곳의 음나무는 모두 상상을 초월할 만큼 웅장하다.

천연기념물 음나무의 공통점은 줄기와 가지에서 가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음나무는 생존의 자신감을 갖는 순간 가시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음나무는 줄기와 가지를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이런 천연기념물 음나무는 성장하면서 밖을 부드럽게 만드는 대신 안을 단단하게 하는 외유내강의 전형을 보여준다. 밖이 부드러워야 다른 존재를 포용할 수 있다. 안이 단단해야 밖에서 파고드는 사악한 기운을 막을 수 있다. 외유내강은 성숙한 인간과 사회의 표상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두릅나뭇#갈잎큰키나무#음나무#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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