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김 “엄마 아빠의 꿈을 이룬 날… 이제 할일은 가족과의 파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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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교포2세 클로이 김 스노보드 우승

부모님 나라에서 열린 올림픽 데뷔전에서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펼친 18세 소녀. 짜놓은 각본보다 더 극적인 황금빛 드라마를 쓴 클로이 김(18·미국)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최고 인기 스타로 떠올랐다.

13일 휘닉스스노파크에서 열린 평창 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압도적 실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클로이 김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16만 명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38만 명을 훌쩍 넘었다. 자고 나면 불어나는 팔로어 수를 보며 클로이 김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는 수용 규모 160명을 넘는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경기 중간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등 시시콜콜한 질문까지 쏟아졌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핫이슈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클로이 김이 어떻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금메달을 땄나’라는 헤드라인으로 그의 트릭을 하나하나 뜯어 분석한 기사를 온라인 홈페이지 대문에 내걸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로이 김이 결선 3차 시기 직전 ‘아침에 샌드위치를 다 먹어야 했는데, 지금 너무 배고파 미치겠다(I‘m getting hangry)’고 올린 트윗에 쓴 ‘hangry’(angry와 hungry를 합친 말)라는 신조어를 새롭게 조명했다.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는 클로이 김.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시상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는 클로이 김. 평창=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00년생인 클로이 김은 태어난 지 17년 296일 만에 역대 최연소 올림픽 설상종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이미 타임지가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스포츠 스타 30인’ 명단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린 클로이 김은 올림픽 데뷔전을 금메달로 장식하며 성공적인 대관식을 마쳤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 5000여 명은 클로이 김의 압도적인 기량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가장 어리지만 가장 강력한 영웅의 탄생에 저마다 성조기로 멋을 내고 경기장을 찾은 미국 팬들은 “USA, USA”를 연호했다. 경기장 곳곳에는 ‘Go, Chloe’라는 응원 문구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클로이 김의 아버지 김종진 씨 역시 오색빛깔로 ‘Go, Chloe’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함께 보드클럽에 다녔던 친구 부모가 보내준 거라고 했다.

“나는 미국과 한국을 모두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큰 영광이다”라고 말한 클로이 김의 매력은 신기에 가까운 묘기에 10대 특유의 발랄함과 실패를 모르는 도전 정신이 꼽힌다.

이날 1차 시기에서 클로이 김은 베이직 에어(그랩을 잡고 높이 뜨는 것) 이후 예선에서 꼭꼭 숨겨놨던 1080(3회전) 점프를 가뿐히 성공했다. 93.75점이 나왔다. 사실상 금메달을 뜻하는 숫자였다. 이미 금메달을 확보한 싱거운 상황.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클로이 김이 여자 선수 최초로 X게임에서 성공시켰던 백투백1080(연속 3회전) 점프를 올림픽에서도 최초로 보여줄지’에 쏠렸다.

클로이 김은 2차 시기에서 곧바로 백투백1080을 시도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3차 시기 마지막 출전선수였던 클로이 김은 앞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아무도 자신이 1차 시기에 기록한 점수를 넘어서지 못해 금메달이 확정됐다. 그래도 대충은 없었다. 여느 때처럼 힘차게 파이프에 뛰어든 클로이 김은 백투백1080을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100점에 1.75점 부족한 98.25점이 나왔다. 확실한 팬 서비스였다.

네 살 꼬마 때부터 마음속으로 키워오던 소녀의 꿈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너온 아버지의 꿈이, 차에 밥솥을 싣고 투어를 따라다니며 묵묵히 뒷바라지해온 엄마의 소망이 한번에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의 부모는 클로이 김이 투어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4년 가까이 매 대회를 함께 다니고 있다. 현장에서 가족과 함께 응원한 외할머니도 감격스러워했다.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클로이 김도 포디엄에 오른 순간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족들이 날 위해 희생한 것을 잘 안다. 오늘 무대를 가족에게 바치겠다.”

클로이 김의 아버지는 최근 슈퍼볼 광고에 딸과 함께 등장해 덩달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클로이 김은 “아빠가 항상 ‘난 이제 유명인이야. 보디가드가 필요해’라고 하신다. 맥주도 걸어 다니며 드시는 자유로운 영혼이다”라며 웃었다.

클로이 김은 다음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외쳤다. “아마 꽤 바쁠 거 같다. 집에 가면 엄마랑 파티할 거다. 엄마, 준비됐어?” 기자회견장 뒷자리에 있던 엄마가 대답했다. “Yes, Big Par∼ty!”

용띠 클로이 김은 어릴 때 집안에서 ‘이뿌기’로 불렸다고 한다. 용이 되기 전 동물인 이무기와 예쁜 여자 아기를 합성한 별명이다. 황금빛 여의주를 문 용이 돼 평창 하늘을 날아다닌 클로이 김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클로이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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