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는 박대성(73) 정재규(68) 김현식 작가(53)의 전공 분야다. 얼핏 쉽사리 접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세 미술가는 의외의 공통점을 지녔다. 사진이긴 한데 사진이 아니며, 수묵화라지만 현대미술 향취가 짙고, 서양화이건만 동양적 기법이 두드러진다. 강력한 KO펀치를 지닌 변칙복서라고나 할까. 미지의 변주를 선보이는데 오히려 본질을 꿰뚫는 세 작가의 작품을 살펴봤다.
○ 찰나의 탈바꿈
정재규 개인전 ‘조형 사진―일어서는 빛’은 말로 풀기가 참 애매하다. 한눈에 봐도 근사하긴 한데, 그 함의를 건져내긴 쉽지 않다. 다만 조형 사진이란 사진을 포함한 기존 이미지를 해체해 재조립하는 걸 지칭하는 용어다.
정 작가의 작업 방식은 이렇다. 하나 또는 여러 이미지를 가늘고 길게 절단한다. 이를 가로 세로 ‘베틀이나 올을 짜듯’ 교차 배열한다.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가 탄생하고 때로는 3차원 착시도 일어난다. 정 작가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작가의 개입을 통해 기성품을 미술품으로 바꿔놓았듯, 정보를 전달하는 사진을 조형적인 예술 언어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로 프랑스에 거주한 지 40년을 맞는 작가의 작품엔 조국을 향한 오마주도 물씬하다. ‘경주’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015년부터 항암치료를 받느라 쇠약해진 그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눈빛엔 20대 청년의 도전정신이 뜨거웠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갤러리. 02-720-1020
○ 빛의 울림
김현식 작가의 작품도 참 오묘하다. 평면화인데 입체화 같다. 빛의 잔향이 선처럼 가득 차 있다. 해외에선 이를 두고 ‘작품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매우 고되다. 일단 투명한 에폭시 레진(열경화성 수지)을 바른다. 건조되는 레진에 선을 그어 홈을 낸 뒤 물감을 칠한다. 이를 닦으면 홈이 파인 부분에 물감만 남는다. 고려청자에 문양을 새기던 상감(象嵌) 기법을 구현한 셈. 김 작가는 “이런 과정을 7∼10번 되풀이한다”며 “한 작품에 최소 1개월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전시작품 46점에 펼쳐진 빛의 만찬은 배가 부를 정도. 전시 제목 ‘빛이 메아리친다’처럼 머나먼 우주에서 마주한 듯한 색감이 경이롭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 02-720-1524
○ 이상향의 여백
소산(小山) 박대성의 개인전 ‘수묵에서 모더니즘을 찾았다’는 제목이 전시 방향을 잘 드러낸다.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소산의 그림엔 큐비즘과 초현실주의, 미니멀리즘, 극사실주의 등이 담겼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적 수묵화지만, 서양 추상화나 정물화가 겹쳐 보인다.
하지만 작법과 별개로 박 작가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동양회화에서 추구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공력이 엿보인다. 묘사 대상의 기질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최고 이상의 경지’를 일컫는다. 소산은 “내 일생을 다 보여주는 전시”라고 말했다.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02-73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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