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할 개헌안이 상정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 격) 개막날. 한 중국인이 기자에게 국가주석 임기 제한 삭제 헌법 수정안에 대한 몇몇 전국인대 대표의 견해를 위챗(중국의 카카오톡 격)으로 보내려 했다. “결연히 지지한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런데 몇 번을 보냈다 하는데도 메시지는 도착하지 않았다.
‘아차.’ 이마를 쳤다. ‘임기 제한 폐기’라는 표현 자체가 중국 당국의 검열로 전송되지 않는구나. 중국은 웨이보(중국의 트위터 격)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시 주석 임기 관련 단어를 검열 삭제하는 전방위 통제를 시행 중이다.
지난달 25일 개헌안 소식이 전해진 직후 중국 누리꾼들이 웨이보에 올린 글들이 생각났다.
“정말 없앴다. 놀라서 죽을 뻔했다. 침묵을 지키며 벌벌 떤다….”
“여러 번 연임할 수 있게 됐다. 1인 독재. 정말 대단하다.”
글 말미에 “‘좋아요’를 누르지 말라”는 댓글이 붙었다. 검열로 삭제된다는 우려였다. “택배입니다. 문 여세요.” “택배를 조심하세요.” 암호 같은 댓글들이 올라왔다. 당국이 집에 들이닥친다는 걱정이었다. 이 글들은 지금 모두 삭제된 상태다.
강도 높은 여론 통제로 인한 공포가 사적 대화도 감히 못 할 만큼 평범한 중국인들을 덮치고 있다.
“졸업에 영향이 있을까 봐 그 민감한 문제는 친구들끼리도 토론은커녕, 언급도 꺼려요.”(20대 중국인)
그래서 공개된 장소에선 찬성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5일 전국인대 개막식이 열린 베이징 인민대회당 현장에서 각지 전국인대 대표들에게 임기 제한 삭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보편적 민의의 일치된 목소리다” “광대한 인민의 요구다” 등의 답이 돌아왔다.
강력한 통제가 ‘침묵하는 반대’를 ‘수동적 찬성’으로 바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헌안이 “인민의 요구”임을 유독 강조하는 데도 눈길이 갔다.
시 주석은 지난해 10월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뒤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인민에게 깊게 뿌리내리고 바짝 기대면 무한한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 본인이 결정했을 개헌안에 인민의 뜻을 강조한 이면에 ‘공산당만의 영도’가 인민들로부터 언제 외면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을 것이다. 한편에선 “부패 문제 등으로 당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40대 베이징 시민)이다.
시 주석은 당 대회에서 “당의 영도가 없으면 민족 부흥은 허황한 꿈”이라며 국가 운명과 공산당 집권을 일치시켰다. “당이 직면한 집권의 시련” “대중 이탈의 위험”을 강조하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당의 장기 집권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두려움이 시 주석이 장기 집권을 택한 이유일 것이다. 이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강조함으로써 장기 집권을 정당화한다. 미국 인도 남중국해 대만 한반도 등 외부로부터 오는 새로운 안보 위협이다. “시 주석 같은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후임이 마땅치 않다”(중국인 학자)는 여론이 조성된다.
당국에 대한 개인의 공포, 인민에 대한 당의 공포, 안보 위협에 대한 공포 등 3가지 공포가 복합적으로 얽힌 1인 장기 집권의 새로운 중국은 시장 개방만 강조했던 중국도, 당 내부 견제가 존재하던 집단지도 체제의 중국도 아니다. 주변국에 대한 비타협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런 중국에 한국은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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