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B병원 5층. 침대 사이의 거리가 1m에 불과한 물리치료실을 지나니 무허가로 증축한 창고가 나왔다. 환자복과 의료용 솜 등 타기 쉬운 물건이 가득했다. 한구석에 쌓여 있는 담요를 치우자 밖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이 나면 이 문으로 환자들을 대피시키나요?” 관할 구청 단속원이 묻자 병원 관계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문 밖은 또 다른 위법 건축물의 지붕이었기 때문이다. 위급한 상황에선 환자가 4m 절벽으로 뛰어내려야 하는 구조였다.
올해 1월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당시 환자와 의료진이 51명이나 희생된 데엔 바로 B병원과 같은 무허가 증축이 있었다. 소방당국이 들고 간 도면이 실제 건물의 모양과 달라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 병원 내부를 뜯어고치길 거듭하는 바람에 2층 병실에서 1층 정문으로 탈출하는 최단 경로인 보조계단이 합판으로 막혀 있었다.
19일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무허가 증축이 적발돼 ‘위법 건축물’로 등록된 병원은 전국에 180곳에 달했다. 주로 환자를 더 받기 위해 창고나 사무실을 입원실로 쓰고, 외벽에 패널이나 합판을 덧대 공간을 넓혔다가 적발됐다. 개조 과정에서 베란다나 복도에 벽을 세우는 일도 있었다. 비상상황 시 대피로 자체를 차단한 셈이다.
B병원은 20여 년 전 처음 건물을 지을 때 2층에 이면도로로 곧장 통하는 뒷문을 만들었다. 의료진과 환자 등 수십 명이 한꺼번에 정문으로 탈출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무허가 증축을 반복하며 기존에 없던 공간이 새로 생기면서 뒷문을 찾기 어려웠다. 입원실과 검사실, 보일러실, 창고 등을 거쳐야 뒷문에 다다를 수 있다. 그나마 평소엔 구조대원이 밖에서 열 수 없게 잠겨 있다. 위법은 아니다. 현행법상 백화점 등 판매시설은 정문이 시설 규모에 부합하지 않으면 출입문을 의무적으로 더 만들어야 하지만 병원은 이런 기준을 적용받지 않는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항공사진을 찍어 예전 것과 대조하거나 현장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위법 건축물이 있는지 점검한다. 적발된 병원엔 위법 건축물을 철거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해당 면적의 시가 표준액 절반을 연간 최대 2회 이행강제금으로 물린다. 무허가 증축 면적이 총 109.9m²(약 33평)인 B병원엔 회당 910만 원의 이행강제금이 부과됐다.
문제는 대다수의 병원이 위법 건축물을 철거하기보다 이행강제금을 내며 버티는 쪽을 택한다는 점이다. 세종병원은 2011년 2월 284.5m²를 무허가로 증축한 사실이 적발됐지만 올해 1월 사고가 발생할 때까지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고 이행강제금 3041만 원을 납부했다. 서울 G병원은 15년간 5억8999만 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불법 증축 철거를 미뤘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무허가 증축 병원 125곳의 평균 위반 기간은 3년 5개월이다.
이는 이행강제금을 내더라도 환자를 더 많이 받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2016년 서울의 한 지자체가 관할지역 내 음식점 등 건물 12곳을 골라 조사해보니 무허가 증축에 따른 평균 임대료 수입은 이행강제금의 4.6배였다. 지자체가 철거를 대집행하려 해도 쉽지 않다. 건물주 측이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해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아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불법을 저질러도 경제적 실리를 취하겠다는 심리가 팽배하다”고 꼬집었다.
건물주가 이행강제금을 ‘영업비용’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일을 막으려면 재부과 시 액수를 크게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은 이행강제금을 2회 이상 반복 부과할 때 액수를 2배로 올린다. 이행강제금을 체납하면 건물주나 병원장을 구금한다. 프랑스는 무허가 건축물에 매출액보다 큰 제재금을 물린다. 한국은 거꾸로다. 이행강제금을 건물의 시가표준액 기준으로 매기기 때문에 시일이 지날수록 감가상각에 따라 오히려 액수가 줄어들기도 한다.
김 의원은 “무허가 증축 병원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하지만 병원이 무허가 증축을 하면서까지 환자를 많이 받으려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너무 낮은 의료수가 때문은 아닌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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