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65) 중국 국가주석이 전격 방중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34)을 파격적으로 환대하면서도 ‘우리가 형님, 너희가 동생’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했다. 중국 당국은 ‘시 주석의 훈계를 듣는 김 위원장’ 이미지를 선전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28일 중국 정부가 관영 매체들을 통해 발표한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회담 내용에 따르면 시 주석은 26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니(니)”라고 불렀다. ‘니’는 ‘너’라는 뜻으로 아랫사람이나 친구 또는 가까운 윗사람에게 주로 쓰는 호칭이다. 시 주석은 “내가 최근 국가주석으로 다시 선출된 데 대해 네가 가장 빨리 축전을 보냈다. 이에 감사를 표시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 발표문은 전했다. 반면 김정은은 시 주석을 ‘닌((니,이))’으로 불렀다. ‘닌’은 ‘니’의 경어로 ‘귀하, 당신’ 정도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이 “당연히 중국에 와서 귀하(시 주석)를 직접 만나 축하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BBC 중문판은 “양측이 상대를 부를 때 대등하지 못한 관계임을 부각했다”고 지적했다. 회담이 진행되면서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은 각각 상대를 “위원장(김정은) 동지” “총서기(시진핑) 동지”라고도 불렀다고 중국 발표문은 전했다.
중국 측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1월 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영어의 ‘미스터 프레지던트’에 해당하는 ‘쭝퉁셴성(總統先生)’으로 불렀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같은 표현을 썼다.
김 위원장에게만 유독 ‘너’라는 표현을 썼다고 중국 측이 발표한 것은 시 주석이 형님 또는 아버지 같은 위치에서, 동생 또는 아들 같은 김정은을 대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관영 중국중앙(CC)TV가 28일 공개한 북-중 정상회담 장면은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와 꾸지람을 듣는 아들과 비슷한 역학관계를 보여줬다”며 “(김 위원장이) 돌아온 탕자처럼 묘사됐다”고 분석했다.
이뿐만 아니라 CCTV는 시 주석이 회담에서 김정은이 수첩에 필기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북한 내에서 시찰할 때 김 위원장의 말을 받아 적는 당정군 고위 간부들의 모습을 클로즈업해 왔다. 그런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의 말을 받아 적는 모습을 중국 관영 매체가 클로즈업한 것은 시 주석이 북-중 관계와 북핵 문제에 대해 김 위원장에게 충고하는 장면을 연출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29일자 1면 대부분을 할애해 시 주석과 김 위원장 회담 결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2면에도 평론과 각국 반응을 실었다. 그간 정상회담 결과를 1면에 보도했지만 4단 중 2단으로 보도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이날 중국의 트위터 격인 웨이보에서 ‘김정은’은 검색되는 반면 ‘리설주’는 검색되지 않았다. 중국 누리꾼들이 리설주에 대한 관심을 쏟아내면서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비교까지 하자 중국 검열 당국이 검색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의 대북 제재 조치 등으로 문을 닫았던 북-중 접경지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의 대형 북한 식당 평양고려관과 류경식당이 최근 영업을 재개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동아일보·채널A 취재진이 전화를 걸어본 결과 두 식당 모두 “영업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정은의 깜짝 방중으로 중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나온 움직임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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