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 별장에서 ‘세기의 회담’이 열렸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만나 ‘핵무기 제거’를 주제로 피 말리는 48시간 회담에 돌입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최종 순간에 고르비의 SDI 폐기 제안을 거부하면서 회담은 결렬됐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는데도 ‘레이캬비크 회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정상회담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이 종말을 고하는데 이 회담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 시사 잡지 ‘애틀랜틱’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레이캬비크 회담의 3대 교훈을 제시했다.
①상대방의 아픈 곳을 찔러라
원래 회담 주제는 핵 문제였지만 레이건 대통령이 먼저 입에 올린 것은 소련의 인권 탄압이었다. 그러더니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문제로 주제를 바꿨다.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기선을 제압하는 전술이다. 데이비드 호프먼 델라웨어대 외교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만 매달리면 지는 게임”이라며 “북한은 약점이 많은 나라다. 인권 유린, 사이버 해킹, 불법무기 확산, 위조화폐 거래 등을 먼저 주제로 올려 북한을 코너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②담당자의 말을 들어라
부하들의 충고를 무시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의 트럼프 대통령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충고다. 레이건 대통령은 처음에는 소련의 SDI 폐기 제안에 솔깃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윌리엄 크로 합참의장을 전화로 긴급 호출해 SDI 폐기에 대해 물었다. 크로 합참의장은 “소련이 놓은 덫이다. SDI는 미국 안보의 핵심이다. 포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직언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고르비에게 ‘노’(No)라고 했다.
③회담을 서둘지 말라
레이캬비크 회담은 레이건 대통령 취임 6년 뒤 열렸다. 그 긴 시간 동안 미국은 군사력을 세계 최강으로 끌어올렸고, 고르바초프와 같은 개혁적 리더가 집권할 수 있도록 소련에 압력을 넣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년도 안 돼 김정은에게 떠밀려 회담에 나가야 한다. 윌리엄 인보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국장은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은 버려라”고 충고했다. 아무런 성과 없이 걸어 나오는 것이야말로 더 훌륭한 업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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