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질문부터 몇 개 던지고 시작하자.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누구일까. 반대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낮은 사람은? 마지막 질문. 비행기를 탈 때 가장 안전한 좌석은 어디일까. 참고로 앞쪽도, 뒤쪽도 아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누구나 막연히 사고 위험(risk)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비행기 사고 걱정 때문에 외국 같은 장거리 여행을 꺼리는 이들도 심심찮게 본다. 5월 19일에도 쿠바 아바나 호세마르티국제공항을 이륙하던 비행기가 추락해 100여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비행기는 정말로 그렇게 위험한 것일까. 수십 년간 축적된 비행기 사고 데이터를 보면 뜻밖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비행기로 전국을 오가는 미국에서 당장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탔을 때 사고로 목숨을 잃을 확률은 약 6000만 분의 1이다.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확률인 약 900만 분의 1과 비교하면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훨씬 안전하다.
○ 비행기 사고, 어차피 죽는다?
이런 숫자를 듣고도 코웃음을 칠 사람이 있으리라. 많은 사람이 비행기 사고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런 사고가 예외 없이 죽음으로 이어지리라는 가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데이터를 살펴보면 뜻밖이다. 놀라지 말라. 비행기 사고 생존율은 95.7%이다. 비행기 사고를 겪은 100명 가운데 1명도 목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을 테니, 자세히 살펴보자. 크고 작은 비행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미국에서 교통당국이 1983년부터 2000년까지 발생한 비행기 사고를 모조리 분석했다. 그동안 비행기 사고에 휘말린 운 나쁜 사람은 모두 5만3417명이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5만1207명(95.7%)이었다.
미국 교통당국도 이 같은 결과가 믿기지 않아 그 가운데 사소한 사고를 빼고 최악의 경우, 즉 화재, 부상, 실질적 손해가 포함된 26건을 추려 다시 통계를 냈다. 공중 폭발 등으로 생존 기회가 없는 사고를 제외하면 가장 ‘심각한’ 사고의 생존율도 76.6%였다. 화재나 폭발 같은 심각한 사고라도 승객의 4분의 3 이상은 살아남은 것이다.
유럽 교통당국도 이와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전 세계 비행기 사고에서 사망한 40%는 실제로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총 1500명의 사망자 가운데 평균 600명은 살아남을 수 있는 사고에서 죽었다. 도대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그 600명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생사를 가른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차피 죽는다’는 비행기 사고에 대한 통념이었다.
나부터 그랬다. 가끔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의 안전수칙 관련 실연을 유심히 살핀 적이 한 번도 없다. 당연히 안전수칙을 설명한 책자에 눈길을 주거나 비상구 위치를 눈여겨본 적도 없다. ‘사고가 나면 어차피 다 같이 죽을 텐데 저런 안전수칙이나 비상구 위치가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었다.
1989년 7월 10일 미국 덴버에서 시카고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232편의 사고는 충격적인 예다. 이 비행기는 고도 1만1000m 상공에서 엔진이 망가지는 등 심각한 기체 결함이 발생했다. 10억 번 가운데 1번 일어나는 확률의 사고였다. 비행기는 아이오와주 수시티의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는 공항에 비상착륙해야 했다.
공항 활주로 근처 옥수수밭에 불시착한 비행기에는 296명이 타고 있었다. 이 가운데 생존자는 185명, 사망자는 111명. 조사 결과 바로 옆에 나란히 앉았던 승객도 생사가 갈렸다. 불과 연기에 휩싸인 비행기에서 재빨리 빠져나온 승객은 살아남았지만, 공황(panic)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항공안전 전문가는 이구동성으로 ‘90초’를 말한다. 비행기가 지상에 불시착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을 때 승객에게 주어지는 탈출 시간은 약 90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불길이 비행기의 알루미늄 외피를 녹여 객실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치솟기 때문이다. 이 90초 동안 안전띠를 풀고 비상구를 찾아 나오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 90초 안에 탈출해야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면 비행기를 타자마자 해야 할 일이 있다. 먼저 가까운 비상구가 내가 앉은 좌석으로부터 몇 열이나 떨어져 있는지 확인한다. 가장 가까운 비상구로 탈출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두 번째로 가까운 비상구 위치 확인도 필수다. 그냥 위치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까지 어떻게 갈지 마음속으로 두 번, 세 번 가늠해봐야 한다.
위기상황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만에 하나 비상탈출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꼭 챙겨야 할 사람을 두 번, 세 번 되새기는 것이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부모가 어린 자식을 두고 혼자만 탈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면 살아도 죽느니만 못한 상황에 부딪힐 수 있다.
안전띠 착용도 중요하다. 자동차의 3점식 안전띠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지만 항공기 안전띠도 1360kg의 힘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안전띠를 착용하고 몸에 딱 맞게 조이는 것만 잊지 않으면 웬만한 충격에도 신체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추락 시 몸이 망가지면 탈출은 불가능하니까.
항공안전 전문가는 ‘90초’와 함께 ‘플러스 3-마이너스 8’도 말한다. 플러스 3은 처음 3분, 마이너스 8은 마지막 8분을 가리킨다. 실제로 비행기 사고의 80%가 바로 이 11분 동안 일어난다. 그러니 비행기를 타기 전 술을 마시거나 수면제를 복용하는 일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 처음 3분, 마지막 8분 총 11분만 긴장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제 앞에서 던진 질문에 답할 차례다. 여러 통계를 종합해보면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젊고 마른 남자’다. 생존 확률이 가장 낮은 사람은 ‘늙고 뚱뚱한 여자’다. 나이가 많고 비만한 여성은 민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90초’ 동안 탈출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젊고 마른 남자도 사고가 난 뒤 얼어붙으면 유리한 신체조건은 무용지물이다. 나이 많고 뚱뚱한 여자도 마음의 준비만 잘하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비행기에서 가장 안전한 좌석은 어디일까. 바로 비상구에서 5열 이내 좌석이다. 덧붙이자면 통로 좌석의 승객이 창가 좌석의 승객보다 탈출 확률이 약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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