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비공개로 만나 기업의 담합행위에 대해 공정위만 고발하도록 돼 있는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를 논의했다. 이런 방향으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카르텔 혐의와 관련된 고발이 늘면서 검찰의 기업 관련 수사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28일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최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찾아 문 총장과 면담했다. 문 총장과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17일 처음 회동한 뒤에 수차례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전속고발권 폐지 방안을 협의했다.
○ ‘카르텔 범죄’ 수사 허용하나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표시광고법, 대규모유통업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등 6개 법과 관련한 불공정행위에 대해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고발이 남발할 경우 기업 활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지만 공정위가 대기업에 대한 고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공정위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 문제는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뜨거운 감자’였다. 공정위는 그동안 ‘법 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까지 설치해 이 문제를 검토했다. 일부 전속고발권 폐지는 거의 확정적이다. TF는 지난해 12월 중간 보고서에서 전속고발권이 부여된 공정위 소관 6개 법률 가운데 △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 등 이른바 ‘유통 3법’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를 권고했다.
문제는 공정위 전속고발권의 핵심인 공정거래법 개정 여부다. 현재로서는 기업 담합과 합병 등에서 불법 행위가 드러나도 공정위 고발이 없으면 수사 진행이 어렵다. 검찰도 담합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어야 강력한 단속과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상의 전속고발권을 없애면 담합 자체를 적발하기 어려워진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담합은 기업 간 은밀한 거래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이 신고한 기업에 대해 처벌을 줄여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전속고발권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정위와 검찰 안팎에서는 양 기관의 수장이 법 위반 혐의가 분명한 카르텔 범죄에 한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즉,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과 ‘기업결합’ 등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는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되 가격이나 입찰 담합 같은 카르텔 행위에는 검찰의 강제 수사가 가능하도록 고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준다는 것이다.
○ 공정위 “전문적 영역에는 전속고발권 필요”
공정위 내에선 여전히 전속고발권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기류가 강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의 경제 활동에 바로 형법을 적용한다면 경영 위축 등 부작용이 작지 않을 것”이라며 “전문가인 경쟁당국이 수사 대상을 미리 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전속고발권 폐지가 대기업 담합을 적발하는 가장 강력한 ‘칼’인 리니언시의 무력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까지는 공정위 조사에 협조하면 고발 면제로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대표적인 전속고발권 폐지론자였던 김 위원장도 취임 이후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취임 당시에만 해도 “전속고발권 제도의 폐해를 가장 많이 경험한 게 바로 나”라며 전면 폐지를 거론한 바 있다. 전속고발권을 예외 없이 폐지할 경우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제도 수정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7월까지 TF의 공정거래법 개정 방안을 제출받아 검토할 방침이다. 공정위 최종안을 8월에 공개하고 연내 국회에 법 개정안을 제출하는 것이 목표다.
검찰과 공정위 수장이 전속고발권 문제를 논의한 것이 6월 지방선거 이후 개혁 조치를 내놓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미 국세청이 대기업 오너 일가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관세청이 한진그룹 오너 일가 수사에 나서는 등 정부 2년 차를 맞아 ‘사정(司正)’ 기류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