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어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공개 이후 밝힌 첫 담화문에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꼈을 국민 여러분께 사법행정권 남용이 자행된 시기에 법원에 몸담은 한 명의 법관으로서 참회한다”며 사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또 “조사결과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고, 모든 의혹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는 걸 안다”며 “각계 의견을 종합해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공개 이후 재심 요구가 확산되는 등 사법 불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가운데 나온 담화다.
2015년 7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회동을 위해 준비했다는 법원행정처의 ‘말씀자료’에는 많은 대법원 판결들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려진 것처럼 예시돼 있다. 이미 농성 중인 KTX 해고 승무원만이 아니라 말씀자료에 언급된 거의 모든 사건의 당사자들이 재심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말씀자료는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작성했다. 임 전 실장은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은 자료라고 했지만 사실 확인이 꼭 필요한 대목이다. 당시 직속상관인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필요하다면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조사가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형사상 조치가 각계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현재로선 임 전 실장이 쓴 ‘사법부가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는 식의 표현만으로 대법원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했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 합의체인 대법원은 대법원장이라도 판결을 좌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단 법원 자체 내에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그래도 사실 확인이 어려우면 그때 검찰 고발을 통해 사실 규명에 나서는 것이 순서다.
특별조사단은 컴퓨터 암호를 해제해 발견한 문건 중 410개를 사법행정 남용 의심 문서로 분류하고 이 중 약 180개의 문건을 발췌 형식으로 공개했다. 일부 판사들은 문건 전체를 원본으로 공개할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원본 공개가 능사는 아니다. 이미 발췌 공개된 문건의 내용만으로 사법부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법 불신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410개 문건 원본에 대해 법원 내에서 다시 검증해서 명백히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자칫 사법에 대한 신뢰가 전면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위기다. 사법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사법의 불신을 조장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법원에서 이념과 세대를 초월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시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