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서남부 항구도시 말뫼는 한때 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 등에 밀려 위기를 맞았다. 세계 최대의 크레인을 보유하고 있던 코쿰스조선소는 1986년 문을 닫았다. 현대중공업이 그 크레인을 단돈 1달러에 사들이자 현지 언론은 ‘말뫼가 울었다’고 했다. 당시 조선소에서 해고된 실업자가 시 인구의 10%에 이르면서 3∼4%에 불과했던 실업률은 20% 이상 치솟았다.
그러던 곳이 상전벽해(桑田碧海)했다.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 말뫼는 지금 ‘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시 4위에 꼽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북유럽의 실리콘밸리’ 이끈 말뫼대
말뫼가 도시 부활을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대학 유치였다. 1994년 시장에 오른 일마르 레팔루는 교수, 기업인, 노조, 주지사, 시장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머리를 맞댔다. 6개월에 걸친 끝장토론 끝에 내려진 결론은 바이오, 정보기술, 재생에너지 산업에 집중하고, 이를 이끌어갈 인력과 기술을 위해 대학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1998년 코쿰스조선소 자리에 말뫼대학이 설립된 배경이다. 말뫼대는 시 예산과 기업 등의 투자기금으로 설립된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하며 신산업 육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의학·바이오·IT 분야 기업에 연구 인력을 제공하면서 말뫼를 첨단산업 도시로 부활시켰다.
지역사회와 대학이 긴밀하게 협력하며 지역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세계 최대 타이어 생산 도시에서 생명의학 중심지로 탈바꿈한 미국의 애크런과 애크런대, ‘스모그시티’ 오명에서 첨단기술 도시로 다시 태어난 피츠버그와 피츠버그대·카네기멜론대, 가깝게는 ‘대학컨소시엄 교토’를 설립해 대학과 도시의 상생발전을 꾀하고 있는 일본의 교토시 등도 주목할 만하다.
‘대학 주도 지역 성장론’의 핵심은 거점국립대
이처럼 대학 발전과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이른바 ‘대학 주도 지역 성장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교육기관에만 머물러 있는 대학에 지역 성장동력 산업을 이끄는 엔진 역할을 맡겨 대학과 지역의 동반 성장을 이루자는 것이다. 때마침 현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방향도 국립대학 지원 확대를 비롯한 대학교육의 공공성 강화, 대학 자율성 향상 등 지역 균형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으로 대학은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주도 지역 성장론의 핵심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울대를 포함해 전국 10개 광역시도에 위치해 있는 거점 국립대를 꼽고 싶다. 거점 국립대들은 탄탄한 교육·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역인재 양성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왔다. 연구 역량 또한 서울 지역 주요 사립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대표적으로 필자가 속해 있는 전북대도 국내 최초이자 세계 5번째인 고온플라스마응용연구센터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LED농생명융합기술연구센터, 미국 로스앨러모스연구소 아시아분원, 농축산용미생물산업육성지원센터 등 세계 수준의 연구소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전북의 성장동력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농생명 산업 활성화를 위해 자연과학·의학·농생명·수의학 분야에서 농촌진흥청 등 공공기관·기업체와 긴밀히 협력하며 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천연물 신약 개발을 주도할 약대를 신설해 국부를 창출하겠다는 것도 대학 주도 지역 성장론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대학-지역 네트워크 구축…지원 크게 늘려야
대학이 주도하는 지역발전을 위해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지역 대학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자체 및 지역 산업체와 긴밀히 협력하는 시스템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대한 지원은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있고, 지방대를 육성해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대학발전이 곧 지역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거점 국립대 간 관계도 교육·연구·산학협력·지역사회협력 등에서 협력이 중요하다. 교육 분야에선 기초학문 육성과 온라인 콘텐츠 개발, 연구에선 연구장비 공동활용과 신진 연구자 간 공동 연구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대학 없는 지역 발전은 상상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대학과 지역의 상생 발전을 위해 교육부만이 아니라 정부 부처,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앞으로 몇 년간 대학을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따라 대학이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각광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사회의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다. ‘대학 주도 지역 성장론’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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