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한 차례 굵은 빗줄기를 뿌리던 장맛 비가 지나갔다. 미세먼지가 모두 씻기고 파란 하늘이 눈부셨던 3일. 기자는 충북 청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주에 위치한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의 우봉식 원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은 지난해 5월 신축 이전한 재활전문병원이다. 이날 만난 우 원장은 “국내엔 급성기 환자를 위한 종합병원이나 만성기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이 대부분”이라면서 “중간 단계의 회복기 환자를 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이 우리 동네 환자중심병원 6번째로 선정됐다.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소위 ‘최신 시설과 시스템’을 갖춘 지역재활병원이다. 충청권 환자들이 서울까지 오지 않고도 체계적인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입소문이 자자했다.
재활치료, ‘타이밍’이 중요해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은 지하 1층, 지상 7층의 249병상을 운영 중이다. 재활의학과 전문의 3명과 내과, 정형외과, 외과, 한방 전문의 등 재활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가 상주하고 있다. 80여 명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등 총 172명의 의료진과 직원들이 회복기 환자의 재활치료를 돕고 있다.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은 의사, 간호사, 의료기관 적정성 평가에서 모두 1등급을 받고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인증을 획득했다. 뇌질환, 다발골절, 교통사고 등 중증환자와 근골격계 환자, 말초신경 손상, 질병으로 인한 마비나 통증이 있는 환자 등 재활이 필요한 회복기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다.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은 회복기 환자의 가정 복귀를 위한 재활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다. 우 원장이 재활전문병원을 열고 지금의 집중 재활시스템을 도입한 결과 1년여 동안 회복기 환자의 가정 복귀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현재는 한 달 기준 70% 정도의 환자가 재활치료를 받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재활치료 기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무릎 인공관절 환자의 경우 한 달 정도 걸렸던 재활치료 기간이 2∼3주 정도면 회복해 퇴원이 가능하다.
급성기를 지난 회복기 환자가 병원에 오면 빠른 재활을 위한 집중치료를 시작한다. 후에 간병인 한 명이 한 명의 환자를 돌보는 1 대 1 간병실로 옮겨 치료를 이어간다. 환자의 회복 상태에 따라 간병인 한 명과 두 명의 환자, 네 명의 환자가 생활하는 2 대 1 간병실, 4 대 1 간병실로 차례로 옮겨가며 맞춤 치료를 받는다. 재활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자립병실로 옮겨 본격적인 가정 복귀를 준비한다.
우 원장은 “재활치료는 타이밍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급성기 환자가 만성질환자가 되지 않고 온전하게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복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재활의학과 전문의인 우 원장이 회복기 환자의 집중 재활치료에 아낌없는 투자와 노력을 쏟는 이유다. 우 원장은 한양대 구리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를 지낸 뒤 현재 대한재활병원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재활시스템이 잘돼 있는 일본의 재활병원들을 2004년부터 10여 차례 오고가며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환자에게 확신을 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
우 원장은 “환자는 때때로 의사가 놀랄 정도로 회복 능력을 보일 때가 있다”고 말한다. 우 원장이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를 하던 때다.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환자가 있었다. 환자는 오랜 시간 깨어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었다.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환자의 부인과 아이들은 매일같이 병실을 찾아와 아빠의 이름을 부르고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놀랍게도 다시 깨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 뿐만 아니다. 환자는 또렷하게 가족들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우 원장은 지금도 가족의 정성이 환자의 의식을 돌아오게 했다고 믿고 있다.
우 원장은 “의사의 한마디가 환자에게 힘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며 “환자에게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50대 초반의 환자가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우 원장을 찾아왔다. 환자는 사고로 뇌가 손상돼 몸 전체가 경직돼 있었다. 완전한 회복이 어려워 보였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치열한 재활치료가 이어졌다. 뇌 질환 환자는 한 번 의식이 깨어나면 운동기능을 회복하기까지 놀라운 속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 원장이 진료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에 의하면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환자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시간이 흘러 환자는 퇴원했다. 어느 날 우 원장이 차를 몰고 가다 신호대기에 걸려 잠시 창밖을 보던 중 우연히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그는 누구의 도움 없이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당당하게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만약 그때 내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그 환자를 포기했다면 그는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우 원장은 생각만 해도 아찔해졌다.
청주에 지금의 재활전문병원을 세우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 원장은 1999년 서울 노원구에 재활의학과 의원을 개원해 10여 년간 환자를 진료했다. 노원구 의사회장까지 할 정도로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그 후 2년은 병원에서 진료를 하는 대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쓰라린 실패. 20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빚을 지고 봉직의사로 다시 진료현장에 돌아왔다. 우 원장은 이때 오히려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의사로서 환자를 돌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청주에 터를 잡고 작은 병원을 열었지만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타 지역 출신이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도 겪어야 했다. 직원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 원장은 “낯선 지역에 와서 재활병원을 개원하고 회복기 환자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현재 재활요양의료기관은 약 5100곳으로 요양환자 수(약 3만6000명)에 비해 적지 않다. 하지만 회복기 환자를 위한 최적의 재활 서비스를 제때 제공하는 특성화된 재활 의료기관은 미비한 상황이다. 작년 10월부터 보건복지부는 재활병원 인증제도 도입을 위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회복기 환자의 재활치료에 아낌없이 투자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의 재활치료실 벽은 방음벽으로 돼있다. 환자들이 소음에 방해 받지않고 온전히 자신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은 자율 보행 로봇 ‘안다고(Andago)’와 가상현실(VR) 이미지를 이용한 보행 훈련 장비 등 최신 재활치료 장비도 갖추고 있다. 자율 보행 로봇은 국내에 5곳 정도가 보유하고 있는 최신 보행 장비다. 환자에게 자신의 의지로 걸을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주고 바른 자세로 걷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치료사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속도도 조절해준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보행 훈련 장비는 환자에게 익숙한 외부환경을 촬영해 VR로 보여준다. 퇴원 후 실제 접하게 될 외부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이엠재활요양병원은 환자의 안전과 치료의 질 관리에도 적극적이다. 재활부와 간호부가 합동으로 ‘환자 일상생활 동작 평가회의’를 실시한다. 또 ‘환자안전 및 질 향상 위원회’를 만들어 환자안전담당 간호사를 전담 배치했다. 사회사업실은 재활치료를 받는 모든 입원 환자를 상담한다. 재활치료와 치료 후 가정 복귀를 위한 각종 지원 방안을 찾아주고 환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노력한다. 입원 환자와 퇴원한 환자들이 매월 정기적으로 모여 재활치료와 가정 복귀 이후에 대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자조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우 원장은 “고령화가 되면서 재활의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특히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회복기에 제대로 된 집중 재활치료를 받아 가정과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재활의료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의료 전달체계는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 후에 회복기 환자가 바로 만성기 환자가 머무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지는 다소 불합리한 상태”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 원장은 “현재 재활환자의 의료급여 제도는 회복기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2∼3개월 만에 병원을 옮겨 다녀야 하는 ‘재활난민’을 만들고 있다”며 “향후 재활병원과 같은 회복기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을 집중적으로 양성해 가정과 사회로 복귀가 가능한 환자는 최대한 복귀시키고 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선정위원 한마디
우봉식 아이엠재활요양병원 원장은 현재 재활의료체계를 ‘급성기-회복기-만성기’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본보의 환자중심병원 선정위원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은 “현재 의료법에 따른 의료기관 종별은 요양병원만을 명시하고 아급성(subacute) 환자를 담당해야 할 재활병원은 명시돼 있지 않다”며 “의료기관 종별에 따른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회복기 환자의 사회 복귀를 위한 병원의 재활 시스템을 칭찬하기도 했다. 한진우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재활이 필요한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퇴원과 입원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사회 복귀를 목표로 집중 재활시스템을 만들고 환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에 높은 점수를 준다”고 말했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전 대변인도 “회복기 재활 환자를 배려한 병원의 여러 시도들은 지역 재활치료에 있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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