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글로벌센터 사무실로 가는 길에 서울광장에서 열린 19번째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잠깐 들렀다. 여기저기에서 무지갯빛 깃발이 휘날렸다. 하지만 난리도 아니었다. 행사장 밖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 행사에 대해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핏대를 세우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이들은 에이즈와 관련해서 잘못된 내용을 담은 전단을 나눠줬고 ‘탈동성애’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안내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은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으며 퀴어 문화를 교류했다.
축제 참가자들을 보며 서울글로벌센터에 자주 오는 어느 동성애 민원인도 여기에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 민원인은 해외에서 한국 남성인 파트너와 법적으로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동성애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비자를 받지 못했다. 이 분은 분기마다 찾아와 도와달라며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뿐이다. 전 세계 30여 개 국가는 이미 동성 결혼을 법으로 인정했고 이런 움직임은 더 커질 것이다.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동성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번 퀴어문화축제를 취소하라는 청원에 20만여 명이 이름을 적었지만 지난해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3% 정도가 동성 결혼을 지지했다.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10여 년간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국에는 게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분명 케케묵은 헛소리였다. 한국에도 분명 다른 나라처럼 성적소수자가 많이 있다.
나도 한국에 오기 전에는 동성애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아니다. 만나봤을 수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아마 독자 여러분도 지인 가운데 성적소수자가 최소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구 하나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혔다. 내게는 그냥 친구였다. 그 친구도 나처럼 멋있는 사람에게 반해서 손을 잡고 뽀뽀하며 데이트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그 친구는 여성이었는데, 한국에서 잘 살다가 한국인 파트너와 결혼하려고 모국으로 돌아갔다.
내 친구와 상황이 비슷한 커플들을 위해서 동성 결혼이 빨리 합법화돼야 한다. 알다시피 법적 부부에게는 여러 혜택이 있다. 연말정산을 할 때 소득공제가 가능하고 일을 하지 않는 배우자도 직장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법적 부부는 배우자와 사별했을 때 여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똑같은 부부처럼 사는 동성애자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 자체가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는 피할 수 없는 본성이다. 한국에서 성적소수자로 사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가 유전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면 그 누구도 자진해서 어려움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어떻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는 여러 단체가 정보를 공유하고 성적소수자들끼리 소통하고 서로를 지지했다. 영국 등 많은 대사관이 참여해서 동성애 친화적인 사회가 어떤지 알려줬다.
숨어 지내는 성적소수자들이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길을 걷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다만 동성애 반대 단체를 겨냥해 일부 참가자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는 행동은 위험하다. 또 축제 자체가 취소될지 모르는 빌미를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는 100% 이성애자다. 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성적소수자들을 지지한다.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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