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보험 들면 중과실外 처벌 면제… ‘돈으로 해결’ 인명경시 조장 논란
국회조사처 “피해자 보호 약화” 결론
주승용의원 “내년 1월 법안 발의”
지난해 10월 대전 아파트 단지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여 숨진 김지영(가명·당시 5세) 양 사건, 같은 달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갑자기 굴러 내려온 SUV에 부딪혀 숨진 최하준 군(당시 4세) 사건 당시 두 아이의 엄마도 함께 다쳤다. 다친 몸을 이끌고 아이를 살리려 했지만 끝내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두 엄마는 가해자를 가중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각각 22만 명, 14만 명의 국민이 뜻을 함께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달 1심 결심 공판에서 가해 차량 운전자들에게 각각 금고 2년을 구형했다. 교통사고 과실치사 혐의의 형량 기준 3년에 따른 판단으로, 아이들을 숨지게 한 혐의만 인정했다. 두 엄마를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선 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았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 때문이다. 교특법은 종합보험에 가입한 운전자가 사람을 치더라도 경상일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한다. 이들에 대한 선고는 각각 다음 달 10일과 이달 17일 이뤄진다. 두 엄마는 “차로 사람을 다치게 해도 처벌은 없이 돈으로 해결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교특법이 시행 36년 만에 폐지가 추진된다. 16일 국회에 따르면 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은 내년 1월 법안 발의를 목표로 교특법 폐지에 나선다.
교특법은 1981년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주도로 만들어졌다. 자동차산업 육성과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제정돼 이듬해 시행됐다. 범법자 양산을 억제하고, 신속한 사고처리로 국민 불편을 줄인다는 취지였다. 14차례 개정을 거쳐 사망과 중상해 인명사고를 비롯해 뺑소니, 과속 및 중앙선 침범 등 결정적인 중과실이 아닌 사고의 경우 종합보험에 가입한 가해 운전자의 형사책임을 면제한다.
하지만 입법 취지와 달리 가해자 보호법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교특법에 대해 “피해자 보호를 약화시킨다”는 결론을 냈다. 난폭운전, 교통법규 위반을 해 사고를 내도 ‘보험 처리를 하면 끝’이라는 인명 경시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교특법은 국내 교통사고가 줄지 않고 있는 원인으로도 꼽힌다. 경찰에 접수된 교통사고는 2013년 21만5354건에서 지난해 21만6335건으로 늘었다. 경찰에 접수되지 않은 보험사 접수 사고까지 더하면 같은 기간 111만9280건에서 114만3175건으로 불어났다. 부상자 수는 2013년 178만여 명에서 지난해에는 2만여 명이 더 늘었다.
일부에서는 경찰의 행정처리 부담 증가, 범법자 양산 등을 우려해 교특법 폐지를 반대한다. 하지만 주 의원은 조정위원회 설치, 사고 처리 간편절차제도 도입 등 대체입법으로 이런 우려를 해결할 계획이다. 교특법이 없는 대신 벌금이 50만 엔(약 502만 원) 이하인 경미한 사고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는 일본의 사례가 예다.
교특법은 주 의원의 계획대로라면 2020년 8, 9월에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 발의 후 1년여 간 해당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고, 본회의 통과 이후 6개월 동안의 유예기간을 거친다는 점을 감안했다. 주 의원은 “교특법은 형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뿐 아니라 교통사고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가져오고 있다”며 “사람이 먼저인 교통문화 정착을 위해 교특법을 폐지하고 국내 실정에 맞는 대체법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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