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린 청와대 영빈관. 붉은 넥타이를 맨 문재인 대통령이 연단에 등장하자 육해공군 주요 지휘관 180여 명은 일제히 거수경례와 함께 “충성”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통상 구호 없이 거수경례만 하는 대통령 주재 군(軍) 행사에서 군 지휘관들이 단체로 ‘충성’을 외친 것.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문건으로 군 전체가 국민적 비판을 받고 문 대통령이 전날 이례적으로 강하게 질책하면서 잔뜩 움츠러든 군 지휘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 국방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국민을 두려워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면서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기무사 문건에 대해 언급했다. 인도를 국빈방문 중이던 6일 기무사에 대한 수사를 지시한 뒤 벌써 네 번째 공개 발언이다. 이날 발언 수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문 대통령은 “기무사의 세월호 유족 사찰과 계엄령 검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있을 수 없는,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고 규정했다. 기무사의 실행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직전 계엄 발령을 검토한 자체가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는 뜻이다. 기무사 문건은 문 대통령의 지시로 구성된 군 특별수사단과 검찰 합동수사단이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인데,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자체에 위법성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수사 독립성 훼손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하극상 논란으로까지 번진 계엄령 문건 사태를 정리하고 작성 및 연루자에 대한 처벌과 군 적폐 청산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기무사 개혁에 대해서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국방력 강화에 기여하는 기무사가 돼야 한다”며 “기무사 개혁 방안에 대해 별도로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방 개혁 2020’이 흐지부지된 데 대해서도 군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며 강하게 질책했다. 문 대통령은 “2006년 (국방 개혁 2020을 통해) 목표로 했던 정예화, 경량화, 3군 균형 발전은 2020년을 2년 앞둔 지금도 요원한 시점이다.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며 “국민이 주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으로 (개혁에) 임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 지휘관들은 개혁을 선도하는 리더들이다. 리더가 먼저 변해야 한다”며 지휘관들의 자정 노력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이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군 통수권자로서 국방 개혁을 직접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기무사 문건을 놓고 동요하고 있는 군심(軍心)을 다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날 문 대통령이 문책 가능성을 밝힌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회의를 마친 뒤 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등 태연한 모습을 애써 유지했다. 회의 뒤 국방부에서 따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장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국방 개혁과 기무사 개혁을 성공시키는 데 제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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