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앞으로 초·늦여름인 5월이나 9월에도 40도를 넘는 ‘폭염 폭탄’이 빈번히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란 경고가 나왔다.
권원태 한국기후변화학회 명예회장(63·사진)은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구온난화로 한반도의 여름은 앞으로 5월 초부터 시작될 것”이라며 “현재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폭염이 5, 9월에도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권 회장은 기후연구실 초대 실장(2000년), 국립기상연구소장(2010년), 기상청 기후과학국장(2012년)을 역임하는 등 기후변화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권 회장은 한반도에 ‘폭염 폭탄’이 매년 투하될 환경이 되어 간다는 점을 우려했다. 권 회장은 “기후 현상은 자연적인 변동이 있어 매년 다르긴 하지만 분명한 점은 폭염이 한반도에 점차 자주 일어나고 있고, 그 원인은 분명 온난화”라며 “여기에 도시화로 인한 열섬 현상이 폭염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폭염 횟수가 늘어나는 것을 넘어 최고 기온 40도 이상의 초강력 폭염이 자주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경고다. 실제 기상청 빅데이터를 보면 이미 서울의 여름 길이는 1910년대(1911∼1920년) 평균 94일에서 2010년대(2011∼2017년) 평균 131일로 37일이나 길어졌다. 지난해는 여름 길이가 무려 140일로 늘었다. 1년 중 3분의 1 이상(38.3%)이 여름이다. 여름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을 유지한 기간을 말한다.
또 폭염 일수는 연평균 10일 정도에 그쳤지만 점차 증가해 2050년경에는 최대 50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른 폭염 사망자 수도 연간 250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는 국내에서 벌써 27명(28일 기준)이 폭염으로 사망해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을 시작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 적도가 뿜는 찜통 샤워… ‘연중 50일’ 폭염시대 온다 ▼
‘오늘도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었다. 이런 폭염이 너무 흔해졌다. 노인 인구가 1800만 명이 넘는 초고령사회에 맞물려 연간 폭염으로 250명이 사망한다.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20도에 가까운 지 오래다. 5, 9월에도 40도가 넘는 폭염 탓에 냉방기기 없이 살기는 힘들다. 사과와 복숭아도 금값이 됐다. 아열대화로 북한에서나 재배가 가능해진 탓이다. 매년 3, 4월이면 말라리아, 뎅기열 등 열대성 질환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한다.’
국내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밝힌 ‘2050년 한반도의 모습’이다. 최근 발생하는 40도 이상의 살인폭염이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보이면서 이를 대비하기 위한 ‘기후대응사회(Climate Resilient Society)’ 구축이 필요하다.
○ 현재 폭염은 지구온난화 때문
권원태 한국기후변화학회 명예회장은 “올해 찜통더위는 물론이고 1994년 대폭염 같은 강력한 폭염이 향후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며 “지구온난화로 적도 부근의 대류현상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구상에 내리쬐는 태양에너지 자체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지구온난화로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적도 부근에서 차가운 공기는 밑에 있고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대류현상이 활발해졌다. 대기 상층으로 올라간 공기는 내려오면서 넓은 영역으로 강하게 퍼지는 ‘슈퍼 고기압’을 만든다.
권 회장은 “물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릴수록 바닥에 떨어졌을 때 강하게 넓게 퍼지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강한 고기압이 한반도 전체를 덮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습한 폭염’도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한반도 주변 바닷물 표면 온도가 27도 이상 올라가 형성된 수증기가 한반도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기상청과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 폭염이 점점 강해져 2050년에는 폭염 일수가 최대 50일, 폭염 연속 일수가 무려 20.3일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폭염 일수가 10일, 폭염 연속 일수는 5일 내외였던 것에 비하면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 극한기후에 대비한 사회시스템 구축해야
폭염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덥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권 회장은 “가축과 양식 물고기가 폐사해 산업이 바뀌고 전염병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온이 1도 오르는 것만으로도 산속 나무들의 생태가 바뀌고 동식물 서식지가 사라진다.
통계청이 4월 발표한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현황’에 따르면 국민 대표 과일인 사과, 복숭아,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2050년 북한 쪽으로 북상한다. 반면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감귤 등은 제주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강원도 등 한반도 남쪽에서 재배된다. 쌀 이모작은 물론이고 망고 등 아열대 작물을 키우는 농가도 늘어난다.
바다 수온도 올라 꽁치 등 일부 어종은 식탁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한반도 인근 바다에서 16만5000여 t이 잡히던 명태(1981년 기준)는 2010년대 들어 잡히지 않아 ‘사라진 어종’이 됐다. 반면 돌돔, 오분자기, 산호초 등 아열대 어종은 점차 늘어난다.
권 회장은 “모든 것이 온난화 탓”이라며 “뎅기열 바이러스를 전달하는 모기는 열대지역 위주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한반도로 서식지가 확장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온난화로 병해충 종류가 증가하는 등 감염병 패턴 자체가 지금과 달라지게 된다는 의미다.
사회 전반에 폭염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 앞으로 ‘기후대응사회’ 구축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양식할 어종을 미리 바꾼다든지, 주요 농작물 생산지를 다시 조정하는 등의 일이다. 권 회장은 “당장 내년 여름은 물론이고 10년, 30년 뒤까지 고려해 장기 폭염과 온난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에너지를 덜 쓰고 온실가스 자체를 줄이는 근본적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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