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의사가 쓴 소설 ‘마취’ 화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2일 03시 00분


김유명 작가
김유명 작가
현직 성형외과 전문의가 전신마취제 프로포폴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소설을 출간했다. 김유명 작가의 ‘마취’. 마취는 전신마취제 부작용인 ‘악성고열증’으로 환자를 잃은 아픔을 가진 마취과 의사가 프로포폴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여배우의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김유명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들어봤다.

―현직 의사로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있나.

어느 시대든, 누구든 삶은 참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것에도 중독되지 않고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우리가 왜 맨 정신으로 살기 어려운지에 대해 생각했다. 혹시 우리에게 자신을 잃어버리려는, 쉽게 말해서 정신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나는 의사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갔다. 대학만 들어가면 고생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현실은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성형외과 전문의, 박사학위까지 받고서 개원의사가 돼 정신없이 살다 보니 매일 반복되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이성과 합리로만 이뤄진 서양의학을 배웠다. 성형외과 의사로서 나는 수많은 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마취를 경험했다. 마취는 서양의학이 동양의학과 현저히 차별되는 점이다. 외과 의사들은 전신 흡입마취제와 수면마취제를 이용해 환자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의식을 소실시키고 수술을 한다. 의사는 잠시 환자의 의식을 없앨 수는 있지만 정작 사람의 심층의식과 각성, 잠과 꿈을 다루는 데에는 서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우리에게는 동양의 정신적인 자산이 많다. 나는 여기에서 새로운 가치의 생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쓰게 된 이유다.

―소설 마취를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마취를 하면 사람의 의식이 소실됐다가 다시 깨어난다. 나는 마취가 죽음과 탄생에 대한 하나의 은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양의학을 배운 동양인으로 마취라는 소재를 가지고 잠과 꿈, 삶과 죽음의 의미를 풀어나가면 독특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취는 의학적 소재라는 서구적 그릇에 동양적인 정신세계, 불교의 공사상, 힌두교의 윤회사상 등을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마취는 여러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 야망과 좌절, 탐욕과 재난, 의식과 영혼에 대한 탐구 등 여러 가지 맛이 버무려져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고통이 소설 속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해결되는지 볼 수 있다. 마취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면의 진실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마취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있나.

5년 전 병원 원장실의 가장 깊숙한 곳, 마취약을 저장하는 약장의 자물쇠를 열고 전신마취제 약병을 꺼내들다가 약병을 놓칠 뻔한 적이 있다. 그 순간 ‘이 병이 깨져 전신 흡입마취제가 바닥에 가득 깔리면 나는 혼자 약의 증기를 마시고 쓰러져 죽을 수도 있겠구나’ 했다. 아무도 날 깨우러 오지 않고 혼자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마취라는 소재로 의학재난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 계획이 있나.

의학 소재로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이면에 담긴 진실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쓰고 싶다. 현재 4번째 작품을 집필 중이고 K-pop처럼 K-medical literature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해외로도 진출하고 싶다. 그래서 한국 소설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KL 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와 함께 하고 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헬스동아#건강#김도완#소설 마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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