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99’와 ‘치마가 짧기 때문이라고요?’를 보면, 이런 구분법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깃발을 든 지야 오래됐지만, 성 평등은 지금도 요원한 게 사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으로 흘러 현실과 괴리를 일으키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또 한쪽에선 조롱과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 두 책은 그런 현 상황을 ‘재기발랄하게’ 타개하려는 여성 예술가들의 분투가 담겨있다.
먼저 일종의 인물 열전 형식을 취한 ‘페미니스트 99’는 부제처럼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여성들의 인명사전”이다. 기원전 630년에 태어난 그리스 시인 사포부터 1997년 태어난 파키스탄 활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까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을 망라했다. 단순히 인물의 생애를 정리한 게 아니라, 각 인물들을 다양한 분야의 페미니스트 성인이라 부르며 그 가치를 짚어내려 애썼다. 실제로 이 책의 원제는 ‘The little book of feminist saints’이기도 하다.
이 책은 참신하면서도 위트가 넘친다. 성인 종교화를 패러디한 그림들도, ‘학자의 수호성인’ ‘운동선수의 수호성인’ 식으로 정리한 글도 흥미롭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정보적인 측면에서도 꽤나 유용한 편. 다만 ‘일기 작가의 수호성인’으로 꼽은 안네 프랑크처럼, 페미니즘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지 애매한 인물도 몇몇 있다.
‘치마가…’는 세계 카투니스트 162명으로 이뤄진 국제 네트워크 ‘카투닝 포 피스’의 작품 모음집. 카툰(만평)이란 도구를 통해 표현의 자유나 인권 민주주의를 천명하는 단체인데, 이 책은 그중에 성 평등과 관련된 작품만 선별했다.
일단 매력적인 그림과 명확한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 게다가 평소 접하기 힘들었던 중동이나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도 크다. 그들에겐 이 정도의 예술 활동도 쉽지 않았을 걸 감안하면 더욱 눈길이 머문다. 하지만 기대가 높았던 탓일까. 기발한 촌철살인의 맛은 다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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