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저임금협상에 왜 노총만?”
● “일자리안정자금? 언 발에 오줌”
● “세금에, 물가에 쓸 돈 없어”
● “최저임금 인상…장비 쓰는 게 싸”
● “정부, 대기업 횡포부터 잡아야”
● “자기 인건비 따먹고 버텨”
“문래동 망하면 대한민국 망하는 거예요. 전자산업이 경제 살려온 거 아닙니까. 전자회사도 기계가 있어야 제품을 만들죠. 그걸 만들어온 게 여기 있는 소공인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산업의 뿌리가 소공인이라고 가르치더니, 이게 뭡니까. 문래동 무너지면 중국에서 기계를 수입해 와야 해요. 걔들은 인건비가 싸니 가격경쟁력까지 있습니다. 우리가 대기업도 아닌데, 최저임금 올린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후속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백승권(가명·48) 씨 이야기는 ‘문래동’에서 시작해 ‘문래동’으로 끝났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소공인(상시근로자 10명 미만 영세 제조업체) 집적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청 시절이던 지난해 2월 5일, 문래동을 ‘도시형 소공인 집적지구’로 선정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소공인은 “부품·반제품을 납품하거나 금속가공 등 숙련기술을 활용해 제조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제조업의 모세혈관이자 우리 경제의 성장과 어려움, 회복의 역사를 함께한 산업의 뿌리”다. 한국 제조업의 젖줄인 셈. 중기부 추산대로라면 국내에 이와 같은 업체는 32만 개 안팎. 이 중 가장 비중 높은 분야가 기계금속 가공이다.
“소공인 망하면 경제 망해”
전체 소공인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16만5000개)에 있다. 경인국도변, 영등포역에서 신도림 방향으로 가는 길 양옆 문래동 1~6가 일대에 기계금속 가공 분야 1350여 개 업체가 밀집해 있다. 몇 평 안 되는 공간에 꾸린 작디작은 공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계금속 가공기술이 꽃피었다. 문래동에 쉴 새 없이 울리는 쇳소리는 ‘기술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백씨의 삶은 쇠와 얽히고설켜 있다. “쇠 깎고 기름때 묻혀가며” 밥벌이를 한 지도 벌써 20년. 첫 직장은 산업기계 업체였다. 28세에 과감히 회사를 뛰쳐나와 소공인의 삶을 시작했다. 주력해 만든 제품은 인쇄회로기판(PCB). PCB는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에서 PC나 휴대전화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자기기에 활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백씨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후 창업했는데, 그래도 제조업이 성장을 이어갈 때니 일감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크게 호황일 때는 없었다. 대신 휘청거릴 만큼의 위기는 잘 넘겨왔다. 살아남는 게 숙제인 업계에서 아등바등 버텼으니 그래도 성공한 경력이었다. 어느덧 백씨는 문래동에서 비교적 규모를 갖춘 업체의 사장이 됐다. “평균 종업원 수 1.29명(중기부)”인 곳에서 경리 업무를 보는 직원과 60대의 공장장, 40대의 직원 2명 등 총 4명을 고용한 것.
지금은 백씨를 포함해 공장에 적을 둔 5명 모두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수년 전만 해도 6억~7억 원 수준을 유지하던 연간 매출은 벌써 절반으로 줄었다. 당장 접고 싶지만 평생 기름밥만 먹어온 직원들이 “한순간 직장이 없어져버리면 그 나이에 어디를 갈지” 몰라 버틸 뿐이다.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에 부닥쳤다는 점을 백씨는 잘 알고 있다. 세계는 기계화됐고, 업계는 세계화됐다.
“과거에는 기계를 만들 때 숙련공들이 가공을 했습니다. 지금은 다 CNC(Computerized Numerical Control) 머신을 돌려서 자동화 생산라인을 구축하잖아요. 기계를 만들어야 사는 저희 같은 업체가 큰 타격을 받죠. 또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공장이 다 해외로 이전해버렸지 않습니까. 거래하는 하도급업체들도 다 따라갔어요. IMF 때보다 일이 더 없어요.”
여기에 2년간 29% 오른 최저임금이 가시처럼 백씨의 삶에 틈입했다. 전례 없는 위기감이 문래동을 휘감고 있다. 겉으로만 보면 백씨 업체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적용된 직원은 경리뿐. 백씨는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받고 인상분을 벌충했다. 하지만 파급효과는 독소처럼 널따랗게 퍼졌다.
“인건비가 오르면 자재를 취급하는 도소매업자들도 가격에 반영하죠. 또 산업용 자재 중에 대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있는데, 그 가격도 올라요. 그런데 3D직종이라 젊은이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외국인 노동자를 써야 하는데, 그 친구들은 최저임금 보장해주면서 먹여주고 재워줘야 합니다. 비용이 더 드는 거죠. 일자리안정자금이 ‘언 발에 오줌 누기’일 수밖에요.”
한때 ‘진보 경제학자’의 대명사로 꼽히던 한 고위 당국자의 인식은 이런 현장의 현실과 가뭇없이 멀어져 있다.
“이전 정부에 비교하면 (일자리안정자금을) 어마어마하게 지원을 해드리는 거고요. 그래서 실제로는 최저임금 인상분의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으실 거라고 저희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저희가 지원하는 것은 당장 피부에 안 와닿고 임금은 이제 당장 나가고 있으니까요.”(홍종학 중기부 장관, 9월 4일 CBS 라디오 인터뷰 中)
“대기업 납품 단가만 내려”
백씨의 업체는 3년 전부터 요식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식당을 열었다는 뜻은 아니다. 전자업체가 비용을 이유 삼아 해외로 떴으니 새로운 고객 찾기에 나선 것. 그러다 커피전문점이나 수제맥주 가게, 샐러드 가게 등 조그맣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포장 기계를 개발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매출 감소를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제작을 의뢰했던 기계를 보류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고단한 밑바닥의 삶이 그야말로 복마전이다.
백씨 표현대로라면 그나마 고용원 없이 혼자 일하는 사장들이 “자기 인건비 따먹고 월세에 전기세에 낼 것 다 내고 하루 종일 일해 끽해야 월 300만 원 벌어가는” 게 문래동의 오늘이다. ‘월급 빼곤 내리는 게 없는 시대’에 300만 원으로 4인 가족이 생존해야 한다.
대기업 횡포도 여전하다. 수십 년간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시민운동가들이 고위 관료가 됐지만 을의 삶은 아직 신산하다. 바꿔야 할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쓸 돈만 높여놓으니 정부에 대한 원망은 더 커진다. 백씨는 “소공인은 없고 대기업 노조만 있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실상을 모른다고 일갈한다. 정부와 대기업 사용자, 양대 노총이 짜놓은 설계도에 소공인의 삶이 강제로 끌려들어갔다. ‘나와 가족의 미래가 나와 무관하게’ 결론 난다. 백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인건비가 올라 비용이 다 오르는데, 대기업 납품 단가는 늘 내려가요. 10%씩 ‘네고(negotiation)’ 해달라고 공문 내려오는 게 연례행사입니다. ‘안 되면 거래선 바꾼다’고 하는 데 어쩝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내려줍니다. 대기업이 ‘야’ 하면 우리는 ‘억’ 하고 쓰러집니다. 기술을 뭐 하나 만들면 빼가려고, 날로 먹으려고만 한단 말입니다. 정부는 그런 거 잡아내라고 있는 거 아니에요? 횡포부터 바로잡고 임금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뿌리가 흔들리면 대기업이라고 잘되겠어요?”
정권과, 산업과, 사람만 바꿔 수십 년간 되풀이돼온 레퍼토리가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다”(19대 대통령 취임사 中)던 정부에서 이어지고 있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도성장기 시절, 일단 성장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납품 가격을 후려쳤는데, 그게 관행처럼 굳어졌다”면서 “중소기업이 신기술을 개발해도 적정 이윤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부터 바꾸고 최저임금을 올렸어야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고통이 적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 줄여야 생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대료도 올랐다. 문래동 소공인 사이에 ‘건물주’ 사장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젠트리피케이션’의 파고가 문래동까지 독감처럼 번졌다. 백씨는 문래동이 집적지 효과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스럽다.
“여기서 공장 빼면 어딜 가겠어요. 지방 가요. 그럼 경쟁력이 떨어져요. 물건 하나 만들 때 한 업체가 다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자재업체도 이 근처에 다 있고, 가공하면 가공 후처리가 필요한데, 그 업체가 또 근처에 있어요. 기계야 스스로 깎아도 열처리와 도금도 해야 하는데, 다 옆에 있습니다. 하나가 삐걱거려 없어져버리면 톱니바퀴에서 톱니 하나가 빠져 덜컥덜컥거리게 되는 거죠.”
통계청이 9월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8월 취업자 수는 2690만7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00명 증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된 2010년 1월에 1만 명이 감소한 뒤 8년 7개월 만에 최저치다. 고용쇼크가 ‘일자리 정부’를 휩쓸어버린 꼴. 같은 날 김동연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 장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 필요성을 공식화했다.
고용동향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 후 내수 경기에 민감한 도·소매업과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가 대폭 줄었다. 이 분야는 대표적인 ‘비숙련노동’, 흔한 말로 단순노동 분야다. 이는 곧 단순노동이 필요한 업계 전반에 ‘고용절벽’ 양상이 도드라질 거란 방증이다. 영농도 그중 하나다.
남부지방 한 소도시에서 영농조합법인을 경영하고 있는 김태수(가명·53) 씨는 평일 새벽 6시면 부동산중개인에게 이런 문자를 남긴다.
“지금부터 오후 4시까지 농장에서 소독해야 해서 전화를 못 받습니다. 거래와 관련해 소식이 있으면 문자를 남겨주세요.”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김씨는 지인들과 공동 투자 형식으로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영농법인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의거한 경영 조직으로, 5인 이상의 조합원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김씨는 소기업 사장이다.
사업은 번성했다. 투자자인 지인들은 투자 금액을 회수하자 법인에서 빠졌다. 이후 김씨가 주축이 돼 법인을 경영했다. 김씨는 야심만만하게 은행 대출을 끼고 평당 120만 원, 총 75억여 원의 거액을 들여 6300평 규모의 유리온실을 꾸렸다. 주력 품목은 파프리카. 일본에 수출해 호황도 누렸다. 직원을 10명 이상 고용한 적도 있다. 지난해까지는 60억 원에도 농장을 팔지 않았다. 지금은 38억 원에도 거래 상대를 못 찾고 있다.
부동산중개인은 “이미 시설 투자한 게 있으니 영농법인을 운영할 사람에게 매각해야 하는데, 내수가 힘들고 인건비 상승이 계속 예정돼 있다. 그러니 앞으로도 수입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따라잡기가 어려워 농장 가치가 하루하루 내려가는 꼴”이라고 귀띔했다.
적자가 쌓여 급기야 사채에 손을 댔다. “25억 원인 빚이라도 청산하기 위해 손 터는 게 더 낫겠다” 싶은데 상황은 녹록지 않다. 남은 방법은 ‘직접 일하거나, 사람을 줄이거나’ 혹은 ‘둘 다’이거나일 수밖에 없다.
김씨는 실패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악재가 겹쳤고, 중요한 고비에 내린 결정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으니 ‘남 탓’만 할 게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다만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탁상행정이었다는 점은 불만이다. 물정에 어두운 세간의 시선에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진다.
“인터넷에 보면 ‘그거 몇 % 올렸다고 왜 엄살 부리냐’라는 말도 있던데, 그게 아니죠.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돈이 팍팍 뛰는 겁니다. 농산물은 수확량이나 날씨 등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기 때문에 인건비 오른 걸 농장주 마음대로 가격에 반영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큰 규모 농장들도 인건비에 민감한 겁니다.”
최근 김씨는 6300평의 땅 중 2000평에만 파프리카를 심었다. 4300평을 쉬게 해 인건비를 더 아끼겠다는 심산. 영농법인 사이에서 ‘고용 줄이기’가 특단의 대책으로 번지고 있다는 게 김씨의 전언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결과적으로는 사람을 줄이는 방아쇠가 됐다.
“인근 농장이 일손이 덜 필요한 바나나를 심었어요. 그 농장은 10명 쓰다가 9명 내보내고 1명만 씁니다. 어차피 내년, 내후년에도 인건비가 오를 테니 미리 치고 나간 거죠. 그런데 재밌는 게 뭔지 아세요? 너도나도 다 바나나를 해버리니 벌써 바나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해요. 그래서 영농하는 사장들이 또 힘들다고 아우성이에요.(헛웃음)”
김씨는 최저임금 인상 취지에 동의한다. 문제는 현장이 직면한 경기다. 성장률에 의지하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다. 소비는 늘지 않고 농산물을 재배해도 팔리지 않는다. 자유무역협정(FTA) 파고에 수입산이 식탁의 한복판을 차지했다. 쌓이는 건 한숨과 부채뿐이다. 거듭 고민해도 나온 결론은 ‘당장 살아야 하니’ 사람을 줄이는 것.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최하위층 소득을 늘리면 소비력이 커져 경제가 재차 반등할 거라 봤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정책이라는 게 김씨 생각이다.
“기공·조공 임금 다 올라”
“파프리카 농장 6300평 굴리려면 10명은 써야 하는데, 단순노동이에요. 최저임금 오르니 아르바이트생도 하루 8시간 일해 8만 원 받아갑니다. 이게 기술학교를 이수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럴 바엔 직접 하는 게 낫다 싶은 겁니다. 그럼 일자리가 사라지는 거잖습니까. 누굴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냐는 거죠. 업종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숙련노동이라고 사정이 나은 건 아니다. 서울 양천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는 장성식(가명·45세) 씨는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마다 처지를 자각한다. 한때 연 매출 20억 원에 순이익만 5억 원을 벌어들이던 시절도 있었다. 많을 때는 사무실에만 12명을 고용했다. 지금은 8평 규모 사무실을 ‘입주청소’ 용역사업을 하는 부인과 나눠 쓴다. 견적서를 내는 과정에서 파트마다 필요한 인력이 있지만 이젠 오롯이 장씨의 몫. 세상의 불이 꺼진 새벽 2시. 휴대전화 액정 빛에 의지해 사무실 문을 잠그는 게 일상이 됐다.
“기술자들도 조그맣게나마 각자 협회가 다 있어요. 최저임금 오르면 기공(숙련공)·조공(데모도·조수) 임금도 계단식으로 다 올라요. 기공 중엔 30만 원 넘는 사람도 있어요. 공사하려면 6명은 부르곤 했어요. 지금은 2명 부르고 장비(포클레인) 부릅니다. 오히려 그게 더 싸요. 기술자 입장에서도 도리어 일거리가 줄어드는 거죠.”
그나마 이는 공사를 수주했을 때 사정이다. 인테리어업계에도 대기업 계열사들의 존재감이 크다. 장씨 회사 같은 중소업체는 수주 때 저렴한 가격을 써내 틈새시장을 공락해왔다. 활황일 때는 대기업과 중소업체가 공존했다. 장씨 표현대로라면 “공사 하나에 30% 마진은 그냥 먹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인건비 상승 압력에 취약한 중소업체가 수주에서 경쟁력을 완전히 잃었다.
장씨는 “중소 인테리어 업체를 겨냥해 기계장비를 개발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 대신 기계를 쓰는 게 더 능률적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일자리 시장이 더 침체기로 접어들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좋은데, 물가 오르고 세금 올라 나가는 돈 많아지면 ‘쓸 돈 없는 삶’은 그대로 아니냐”라고 꼬집었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이 시장에 주는 충격이 너무 큰데, 정부가 원했건 아니건 결과적으로 시장을 위축시켰다”면서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역행하는 셈이 된 꼴”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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