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광이라면 1991년 개봉한 조디 포스터, 앤서니 홉킨스 주연의 ‘양들의 침묵’을 기억할 것이다. ‘양들의 침묵’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공포영화지만 피가 난무하는 말초적이고 일차원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극 중 인물 내면의 심리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심을 극대화한 영화다. 인간이 형체가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미지화하려 한다는 점을 절묘하게 이용한 사례다. 물론 인간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늘 공포심만 가지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공포를 부정한다. 아무리 말이나 글로 잘 설명하더라도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 정보는 신뢰할 수 없는 정보로 치부하고 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표현할 때가 바로 그런 예다.
최근 사회적 재난으로 떠오른 미세먼지 문제 해법 역시 보이지 않는 공포라는 같은 출발점을 가진다. 정부가 미세먼지 경보를 발령하면 공포심에 사로잡힌 나머지 환기도 하지 않고 공기청정기를 맹신하며 실내공기 질을 더 악화시키거나,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의 특성상 정부의 경고를 신뢰할 수 없는 정보로 치부하고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두 경우 모두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의 무지에서 오는 공포가 올바른 대응을 방해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국민은 보이지 않는 공포에 떨며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 각각의 생활 위치에 대한 상세한 미세먼지 정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 매년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미세먼지 문제는 국내·국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몇 개의 조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따라서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과 함께 상세한 현황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세먼지 정보의 시각화는 해외에서는 이미 현실화했다. 우리와 같이 중국발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대만은 환경당국의 주도로 사물인터넷(IoT) 기반 공기측정기를 학교 위주로 전국 260여 곳에 설치해 공기 질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스마트시티를 위한 오픈 플랫폼을 설치해 운영한다. 암스테르담 정부의 환경 데이터뿐 아니라 시민이 자기 생활공간의 공기 질 상태를 누구나 쉽게 측정해 공개함으로써 민관이 함께 공기 질 향상에 협동하고 있다. 두 사례 모두 공기측정망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정부와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돼 미세먼지 정책 수립과 국민 건강을 위한 기본 정보로 활용된다.
미세먼지는 지역, 높이 등 위치에 따라 수치가 다른 특성을 보이기 때문에 실제 생활공간에 촘촘한 측정망을 구축해 상세한 미세먼지 현황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민이 미세먼지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우리 국민을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의 공포에서 해방해줄 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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