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미세먼지도 고마울 때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4일 03시 00분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언제부터인가 겨울을 앞둔 우리의 걱정은 ‘얼마나 추울까’가 아니라 ‘얼마나 미세먼지가 심할까’로 변했다. 겨울철 미세먼지는 난방을 위해 화석연료의 사용이 크게 늘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난해 11월 전국적으로 5건이었던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같은 해 12월 32건, 올해 1월에는 81건까지 늘어났다가 따뜻해진 4, 5월 두 달 동안 2건으로 줄어들었다. 올겨울에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얼마나 늘어날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세먼지는 발암물질로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산업과 경제, 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피해를 끼친다. 하지만 이러한 애물단지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때가 있다. 미세먼지를 줄이려는 노력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데에 긍정적 효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대책은 시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속성이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도록 하는 동기 부여가 쉽지 않다. 온실효과를 가져다주는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배출되면 전 지구로 확산돼 오랫동안 축적되면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가해자의 책임의식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언제, 어디서, 어떤 기상이변이나 온난화를 초래할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기에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가 몰고 오는 위험은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맞서 싸울 분명한 적군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했고, 노르웨이의 경제학자 페르 에스펜 스톡네스는 기후변화에 대한 종말론적 접근법은 끊임없는 잔소리에 불과해 “과학커뮤니케이션 역사상 최대의 실패 사례”라 지적했다. 결국 “이산화탄소 배출이 왜 문제가 되는 행동인지에 관한 끊임없는 지적 훈련이 필요하다”(데일 제이미슨 미국 뉴욕대 교수)는 원론적 결론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최근 지구온난화 논쟁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환경론자와 이에 반대하는 회의론자의 진보 대 보수 프레임까지 덧씌워지면서 그 양상이 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세먼지의 등장은 지구온난화 대응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 이산화탄소와 달리 미세먼지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까운 거리에 있고, 확산되거나 축적되지 않고 비에 씻겨 내려간다. 또한 도덕적 의무감보다는 피해를 회피하기 위해 우리가 직접 대응한다는 특징이 다르다.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는 화석원료 사용이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다른 양상의 결과이므로 그 해결책은 같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진보와 보수로 갈렸던 논쟁은 하나의 해결책으로 귀결된다. 분명한 가해자와 막연한 피해자에서 그 피해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기후변화 문제는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가 대응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문제로 돌려준다. 이러한 덕목에도 불구하고 미세먼지의 공포에 고마워해야 하는 역설이 결코 유쾌하지는 않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미세먼지#지구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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