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가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액체에는 많은 생물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임신과 수유의 시기를 제외하면 가슴을 보고 성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도 평상시에는 커다란 가슴을 달고 다니지 않는다. 모두 동일한 포유류인데 왜 인간의 여성은 사춘기 이후에는 왜 항상 커다란 가슴을 달고 다닐까? 그리고 왜 가슴은 아름다움의 징표가 되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서는 많은 진화적인 가설들이 있지만, 그 가슴의 본질적 목적, 즉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유를 살펴보면 놀라운 또 다른 비밀이 있다.
아이는 세균들로 가득한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출산 직후 아이에게 엄마가 가장 먼저 하는 일, 그 것은 ‘아이를 위한 가장 완벽한 음식’ 바로 젖을 물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젓 속에는 수십만 마리의 세균과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아이도 모유가 모자라 혼합수유를 했는데, 분유를 먹일 때 마다 살균, 소독, 멸균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내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칫 놀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유 속에 있는 세균들을 모유 미생물(HMMs)이라고 한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모유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는 세균의 양이 하루 약 80만 마리나 된다. 그리고 이 세균들을 위해 엄마가 만든 특별한 먹이를 모유 올리고당(HMOs)이라고 한다.
모유에는 분유보다 100∼1000배 많은 HMOs가 들어 있다. 분유가 모유를 모방할 수 없는 이유는 영양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살아 있는 생명체, 즉 공생 세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HMMs과 HMOs는 아이의 장과 전신의 건강을 위한 필수요소다. 그래서 모유의 절반은 아이를 위한 것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세균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균들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모유 속 세균들의 상당수가 엄마의 장(gut)에서 왔다고 한다. 출산 전부터 엄마는 아이를 위해 자신의 가슴에 아이에게 전달해 줄 세균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출산이 시작되면 자신과 평생 함께 살았던 세균들을 수유라는 형태로 아이의 장에 전달하는 것이다. 엄마의 장-가슴-아이의 장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형태의 수직 유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모유를 만드는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어쩌면 세균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유 속 세균은 바로 아이의 장에 뿌려지는 세균들의 씨앗인 것이다.
가끔 임신을 계획 중인 젊은 여자 환자들이 다양한 전신의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한다. 장 건강에 문제가 있고, 장내 유해균이 많다고 의심되는 환자에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엄마의 장이 건강해야 아이의 장도 건강합니다. 당신이 아이에게 주는 것들 속에는 당신의 장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온 세균들도 포함됩니다.” 내 진료실에서의 치료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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