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가진 럭셔리 카 ‘디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9일 03시 00분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부가티 디보는 2016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시롱을 새로운 개념으로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 차다.
부가티 디보는 2016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시롱을 새로운 개념으로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 차다.
럭셔리 카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오랜 세월 이어진 장인정신, 탁월한 성능, 품격 있는 디자인, 오너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 대한 존중 같은 것들이다. 요즘은 프리미엄 브랜드들도 그런 특징들을 내세우곤 한다. 프리미엄과 럭셔리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브랜드 성격은 미묘한 차이로 달라진다. 그러나 그 ‘미묘한 차이’가 브랜드와 차의 가치를 달리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대표적인 것이 ‘스토리’의 존재 여부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의 유형 중 하나인 신화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치열한 전쟁을 겪으며 성장해 세상을 구원하는 영웅 신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의 사랑을 받은 서사로 꼽힌다. 럭셔리 카에서는 그런 스토리가 브랜드나 차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배경이 되곤 한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갈수록 자신들의 옛 차, 즉 클래식 카와 과거 이야기를 알리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 스토리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보고 듣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고, 프리미엄 브랜드 또는 ‘모던 럭셔리’를 자처하는 신생 브랜드에 없는 가치라는 점을 차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 브랜드 부가티(Bugatti)가 올해 선보인 디보(Divo)는 오늘날의 럭셔리 카가 가져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차이다. 차 자체가 갖는 특별함은 물론이고 뿌리 깊은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 신화적 스토리가 든든하게 그 차를 뒷받침하고 있다.

부가티는 1909년에 설립되어 1920년대와 30년대를 풍미했던 럭셔리 브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유려한 겉모습 뿐 아니라 엔진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미적으로 고려한 철학이 독특했고, 당대 여러 모터스포츠에서 수많은 우승 기록을 남겼다. 자동차 마니아로 유명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부가티를 몇 대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동차 산업과 시장이 재편되며 힘을 잃었던 부가티는 1963년부터 30년 넘게 자동차 역사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 한 이탈리아 사업가가 상표권을 사들여 부활시키려 시도했고, 1998년에는 폴크스바겐 그룹에 인수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성기에 워낙 출중한 브랜드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던 만큼, 짧지 않은 공백기는 오히려 부가티의 이미지에 전설적인 분위기를 더하기에 충분했다. 지금의 부가티는 영광스러운 브랜드의 과거에 흠집을 내지 않도록 비교되는 특별함을 내세우며 현대적 기준에 맞는 럭셔리 카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앞모습이 시롱과 다르면서도 말굽 모양 앞 그릴 같은 핵심 디자인 요소는 그대로 이어받았다.
앞모습이 시롱과 다르면서도 말굽 모양 앞 그릴 같은 핵심 디자인 요소는 그대로 이어받았다.
디보는 그런 부가티가 내놓은 최신 모델이다. 차의 이름은 폴크스바겐 그룹이 인수한 뒤에 내놓은 모든 모델이 그랬듯, 부가티의 모터스포츠 전성기를 빛낸 자동차 경주 선수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번 차의 이름에 뿌리가 된 사람은 알베르 디보. 당대 가장 거칠고 험난한 로드 레이스(통제된 일반 도로에서 치러지는 자동차 경주)로 유명했던 타르가 플로리오에 부가티 타입 35 경주차를 몰고 출전해 1928년부터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사람이다. 그는 모터스포츠로 프랑스를 빛낸 공로를 인정받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디보는 완전한 새 모델은 아니다. 2016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시롱(Chiron)을 새로운 개념으로 업그레이드한 차다. 시롱은 이전 모델인 베이롱(Veyron)의 뒤를 이어 현대적 초호화 스포츠카의 상징으로 꼽힌다. 네 개의 터보차저가 달린 16기통 엔진, 정지 상태에서 불과 2.4초 만에 시속 100km, 6.5초 만에 시속 200km를 넘기는 놀라운 가속력, 평범한 차로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시속 420km의 최고 속도, 기본 값이 250만 유로(약 32억 원)에 이르며 1년에 20여 대밖에 생산되지 않는 특별함에 견줄 수 있는 차는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시롱을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 차가 바로 디보다.

부가티 사장인 슈테판 빙켈만은 디보를 가리켜 ‘코너를 위해 만들어진 차’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탁월한 시롱의 성능에 코너를 돌 때 운전자가 느끼는 핸들링의 즐거움을 더했다는 뜻이다. 이는 시롱에서 추구한 럭셔리카와 스포츠카의 균형에서 무게중심을 스포츠카 쪽으로 조금 더 옮겼으며, 부가티의 모터스포츠 전통을 한층 더 적극 계승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주에 출전할 수는 없어도 지금의 부가티 오너에게 옛 전성기의 영광을 가져다준 경주차와 경주선수들의 정신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새로운 디자인의 휠은 시롱에 쓰인 것보다 가벼워 성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새로운 디자인의 휠은 시롱에 쓰인 것보다 가벼워 성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디보의 차체 무게는 시롱보다 35kg 가볍고 공기역학 특성을 개선해 고속에서 차체를 노면으로 누르는 힘을 키웠다. 서스펜션과 스티어링은 차의 움직임이 더 정교해지도록 조율했다. 그 덕분에 최고속도는 시속 380km에서 제한되지만 코너링 한계속도는 훨씬 더 높아졌다. 번호판을 달고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차지만 트랙 주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디보는 고속주행 시험용으로 쓰이는 이탈리아 나르도 원형 트랙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시롱보다 8초 짧다고 한다.

안팎 모습의 변화는 기본 모델을 바탕으로 특별하게 꾸민 차를 만들었던 부가티의 코치빌딩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차체 구조와 달리기 위한 장치들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실내외는 같은 부품을 쓴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좁아진 옆 유리를 비롯해 운전석 쪽으로 집중된 디자인 요소와 날렵해진 측면 라인은 차를 더 낮고 길어 보이게 한다. 차체 앞쪽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만들었고, 차체 안정성을 높이면서 엔진과 브레이크 냉각을 돕는 공기역학적 장치들을 곳곳에 새로 배치했다. ‘형태는 성능을 따른다(Form follows Performance)’는 부가티의 디자인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아름다운 차체는 공기역학 특성을 개선해 고속에서 차체를 노면으로 누르는 힘을 키웠다
아름다운 차체는 공기역학 특성을 개선해 고속에서 차체를 노면으로 누르는 힘을 키웠다
44개의 독립된 핀이 각자 빛을 발해 입체 효과와 속도감을 내는 테일램프, 일부 3차원(3D) 프린팅 공법을 사용해 만든 뒤 그릴처럼 구석구석 반영된 최신 기술도 기능과 아름다움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말굽 모양의 앞 그릴, 곡선이 두드러지는 상징적 옆모습, 위에서 보았을 때 마치 뼈대처럼 보이는 차체 중앙의 핀과 같은 부가티의 핵심 디자인 요소는 그대로 이어 받았다. 디보는 시롱과 ‘같으면서도 다른 차’인 셈이다.

디보의 값은 약 500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65억7000만 원으로 대략 시롱 기본 모델의 두 배에 가깝다. 심지어 그만한 값을 치를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공장에서 출고된 디보를 곧바로 손에 넣을 방법은 없다. 차의 존재가 알려지기 훨씬 전에 생산 예정된 40대가 이미 완판되었기 때문이다. 럭셔리 카가 가져야 할 특별함의 정점을 보여준다. 내년은 부가티가 설립된 지 11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하는 모델로 디보만큼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차도 드물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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