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미국의 요청을 받고 중국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孟晩舟·46) 부회장을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했다가 미중 무역전쟁의 급류에 빨려 들어갔다. 중국은 캐나다인 2명을 억류하며 압박했고, 멍 부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중국의 뒤끝이 얼마나 심했는지 캐나다 고가 패딩 브랜드인 ‘캐나다구스’ 주가마저 급락했다.
절대 강자인 미국엔 침묵하면서 미국을 돕는 동맹국에는 가차 없이 보복하는 대국의 민낯이 드러난 게 처음은 아니다. 북한 미사일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했을 때 중국은 한국을 때렸다. 중국이 단체관광객의 한국 방문을 막으며 한국 경제를 압박했을 때 그들을 평생 친구로 생각했던 한국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유엔과 같은 국제무대에선 서구의 패권에 대항하는 수평적 다자주의를 강조하지만 실제 행보는 혼란스럽다. 봉건시대 제후국을 대하듯이 중국 중심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역린(逆鱗)을 건드리면 크건 작건 본때를 보이는 패권국가의 전근대성도 보인다.
인구 2만여 명의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팔라우도 중국에 그렇게 당했다. 하루에 태어나는 중국 신생아 수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를 가진 이 작은 섬나라가 대만과 국교를 맺고 있으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중국에는 눈에 든 가시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외교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팔라우 단체여행을 막았다. 대만 항공사가 운영하는 팔라우 퍼시픽에어웨이스는 중국인 여행객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올해 7월 중국 노선을 폐지했다. 섬에 호텔을 짓고 건물을 사들이던 중국인 큰손 투자자도 손을 놓았다. 관광 등 서비스업 비중이 경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팔라우가 받은 타격은 엄청났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인구대국이라는 점에서 소수의 인구로 세계 패권을 쥐었던 영국이나 미국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관광산업마저 무기화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와 힘을 갖고 있다. 여기에다 위안화가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 반열에 오른다면 미국의 독자제재처럼 중국 금융시스템에서 퇴출시키는 것만으로 한 나라 경제를 위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캐나다, 팔라우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쩌면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벌어질 일의 예고편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런 중국과 싫든 좋든 등을 맞대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게 한반도의 운명이다. 대중 외교를 강화하려고 한다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친중파’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잠재적 위험 요인까지 따지는 ‘낙관적 현실주의자’가 훨씬 더 많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쏠림은 없는지 점검하고 대비하는 중장기 국가 전략시스템도 가동해야 한다.
팔라우는 중국인 관광객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커진 뒤에야 중국에 의존하는 자국 관광산업의 취약점을 깨달았다. 뒤늦게 중국의 위협에 맞서 중국인 단체관광객 대신 1인당 매출액이 훨씬 큰 유럽이나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친환경 고부가가치 관광산업을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산호초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에 이어 선크림 사용을 선제적으로 금지한 이유다. 최근 팔라우 당국은 중국인 관광객은 줄었지만 1인당 매출액이 늘면서 전체 관광 매출은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섬나라 팔라우에서 일어난 일들은 ‘전쟁의 승패는 싸우기 전에 판가름 난다’고 했던 손자의 말을 곱씹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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