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집착-의심증-폭력성 심해지면 치매 의심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15일 03시 00분


[4060 건강 지킴이]<4>치매 진단과 예방법 (상)

김어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황금고(가명) 씨에게 치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말 송년회 술자리와 관련해 김 교수는 “알코올이 장기적으로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며 금주를 권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김어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황금고(가명) 씨에게 치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말 송년회 술자리와 관련해 김 교수는 “알코올이 장기적으로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며 금주를 권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간병비가 2000여만 원. 치매에 드는 사회적 비용만 연간 14조 원으로 추정된다. 치매는 방치하면 국가적 재앙이 된다. 4060세대부터 치매 예방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에 걸쳐 치매의 진단과 예방 방법을 다뤄 본다.》

송년회다 뭐다 해서 술자리가 많아지는 요즘이다.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때마다 물건을 잃어버린다면 속이 탄다. 이러다 치매에 걸리는 것 아니냐는 탄식까지 나온다. 직장인 황금고(가명·52) 씨가 딱 그런 사례다.

황 씨는 최근 지인들과 송년회를 하다 만취한 뒤 택시를 탔다가 휴대전화를 놓고 내렸다. 두 달 전 장만한 최신 제품인 것도 안타깝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모두 날리게 돼 더 속상했다. 돌이켜 보니 술을 마시던 중간부터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른바 필름이 완전히 끊기는 현상(‘블랙아웃’)인데 최근 이런 일들이 잦아지고 있음도 느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고, 사람들 이름도 자주 잊어버리며, 집중력이 크게 떨어졌다. 황 씨는 이 모든 게 치매의 전조 증세처럼 여겨져 걱정이 됐다. 황 씨가 김어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 알코올, 장기적으로 치매에 치명타

김 교수는 황 씨에게 술부터 끊으라고 했다. 김 교수는 “술이 당장 치매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블랙아웃이 잦다면 아주 위험하다고 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블랙아웃은 뇌의 ‘해마’ 기능이 약해졌기 때문에 발생한다. 해마는 기억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부위다. 컴퓨터의 저장장치와 같다. 저장 버튼을 누를 때 컴퓨터에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처럼 해마가 이 저장 버튼을 수시로 작동시켜야 다음 날에도 기억은 온전히 살아난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해마가 알코올에 취약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당시의 일들은 뇌피질, 시각중추 등 뇌의 여러 부위에 분산돼 임시로 저장된다. 그러니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멀쩡히 행동하고 대화하지만 기억장치에 저장되지 않고, 이튿날 전날 상황을 되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 자연스러운 노화와 치매 구분해야

황 씨가 “주변 지인들 중에 50세를 넘어서면서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는 친구들이 많다. 치매와 관련이 있나”라고 물었다. 반찬을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휴대전화를 넣은 채로 닫았다는 중년 여성들 얘기도 꺼냈다. 이 모든 증세에 대해 김 교수는 “정밀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대부분은 단순 노화에 따른 현상이라 보면 된다”고 답했다.

나이가 들면서 뇌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폭음을 하지 않더라도 해마 기능은 약해진다. 해마 기능뿐 아니라 ‘작업 기억’ 기능도 떨어진다. 이는 일을 할 때의 기억을 뜻하는 것으로, 일종의 단기 기억이라 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젊었을 때는 보통 7개까지의 단어를 동시에 저장하고 꺼낼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 3개 정도로 줄어든다”고 했다. 물건을 분실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가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전두엽의 세포 수가 줄어든다. 그 때문에 뇌에 저장된 기억을 불러내는 기능이 약해진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건망증이 이렇게 해서 생긴다. 스트레스가 커질 때도 일시적으로 이런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가령 냉장고 속에 휴대전화를 넣는 순간에도 아픈 아이나 친정집 일 걱정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작업 기억을 갉아먹는다. 나이가 들면서 화를 자주 내는 것 또한 전두엽 기능이 떨어진 게 원인이다.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비슷한 이치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해당 파일을 어느 폴더에 저장했는지 즉각적으로 알아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특히 평소에 시각적 기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얼굴 정보를 기억하는 시각 영역과 이름 정보를 저장하는 언어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증세가 심하지 않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심하다면 동맥경화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두 영역을 연결해 종합적으로 정보를 인출하려면 신경섬유가 튼튼해야 한다. 이 신경섬유를 연결하는 미세혈관이 동맥경화 때문에 많이 끊겨서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긴 탓일 수도 있다.

○ 조기 검사로 빨리 발견하는 게 핵심

언어활동에 문제가 있는 사례는 어떨까. 이를테면 ‘선풍기’를 ‘풍선기’라거나 ‘강아지’를 ‘아강지’라고 발음하는 일이 많아지는 경우다. 이럴 때는 횟수를 세 봐야 한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면 자주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그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전두엽에 문제가 생긴 치매일 가능성이 있다.

황 씨는 “주변의 어른 중에 갑자기 면도날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었다. 비싼 면도날을 한 번만 쓰고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특정 사물에 대해 집착하거나 의처증 혹은 의부증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폭력적인 경향이 심해졌다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치매 진단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혈액검사부터 시행한다. 뇌에 혈액이 고인 뇌결막하혈종이 원인인지, 갑상샘의 기능이 떨어져서인지, 혹은 뇌에 필요한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것인지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만약 치매로 보이는 현상의 원인이 이런 질병들이라면 치료는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이런 검사를 통해 다른 질병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면 신경심리검사를 진행한다. 뇌의 영역별로 인지검사를 진행한다.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그 이후에는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통해 치매를 확진한다.

위축된 해마를 펴는 방법은 아직까지 없다. 치매와 싸우기 위한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치매가 진행되는 속도를 늦춘다. 최근에는 뇌 세포를 새로 만드는 방법에 의학적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이와 관련한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뇌의 에너지 대사 증진, 치매치료 신약개발 주력▼

치매 베스트 닥터 김어수 교수

김어수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47)는 치매 환자를 주로 상대한다. 주 연구 분야도 치매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행동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2년여 근무하다 최근 돌아왔다.

김 교수는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보통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이 뇌 조직에 쌓이는 독성 단백질에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 교수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독성 단백질 자체가 치매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김 교수는 뇌의 에너지 대사 장애가 원인이라 본다. 따라서 뇌의 대사를 증진시키는 원리의 항치매 약물을 찾아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며, 현재 국제특허도 출원한 상태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에서 효능을 발휘했지만 인체실험에서 효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교수는 사람과 동물 모두를 대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인지행동평가를 하는 방법과 기술을 국내에 도입했다. 또 이 방법을 실제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제 치매 환자의 유전자를 주입해 만든 치매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행동장애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 뇌과학(뉴로사이언스)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치매#치매 예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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